귀한 집의 자식답게 희고 부드러워 보이는 얼굴에 잡티 하나 없었고 귓가를 따라 흘러내리는 머리는 샴푸 모델 광고마냥 윤기 있게 찰랑였다. 전체적으로 선이 가늘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여 곱상하고 귀티 있는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얼굴뿐만이 아니다. 의자에서도 꼿꼿하게 허리를 핀 단정한 자세를 한 채 수줍음도 그다지 없는지 연상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는 서 있었는데 아마 레오와 비슷한 키. 조금 구부정한 레오의 자세와 달리 두 발을 땅에 딛고 바른 자세로 레오와 마주했다. 그 때는 거의 말이 없었지만 지금은 나오는 목소리도 낭랑하다. 자신이 옳다는 것에 확신이 들어있는 그런 목소리 같았다.
오늘은 성 안에만 있던 공주님이 처음 백성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날. 화려한 드레스를 입히고 머리엔 눈부신 왕관을 씌워서 모두가 우러러 보게 하자, 우리의 공주님을.
레오는 손이 근질거렸다. 트럼펫을 오프닝으로 해서 백합송이처럼 여린 것 보다 붉게 핀 장미 같은 당찬 공주님의 느낌으로-. 펜을 어디에 뒀더라, 종이는 있던가? 펜만 있으면 어디에든 쓰기만 하면 되니까.
그걸 가까스로 참아낸 건 흔들림 없는 시선 때문이었다. 레오는 이번엔 다른 생각을 했다. 누구랑 닮은 것 같은데. 술술 풀리던 곡의 도입과 달리 이상하게도 그 누구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예의 바르지만 자신의 뜻을 확고히 품은 존댓말이 귀가에 울린다. 말이라기 보단 음에 가깝게 들렸다. 그만큼 레오는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의 말뜻을 곱씹어보기 보다는 자신의 악상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레오는 눈앞의 사람에 집중해야 했다. 집중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가까스로 모았다가 다시 물을 만난 물감처럼 이내 흩어진다. 결국 상대의 심기 불편한 목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혹시 제가 무례한 부탁을 하고 있는 건가요?”
아니, 아니.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이쪽은 영광이었다.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 레오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자신이 감히 해도 되나 싶지만, 상대가 권유했으니 의뢰를 받은 셈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받았으니까.
레오는 건네받은 종이를 다시 살폈다. 검은 선과 점을 겨우 글자로 인식하고 내용을 다시금 읽어간다.
“으음, 이런 느낌은 어때?”
추상적인 단어들을 연결해서 머리에 떠오른 곡을 흥얼거렸다. 아니, 거짓말. 예전부터 자신이 곱씹던 멜로디였다. 소식을 듣고 뭉쳐진 감정만큼 소란스러운 음들이 겨우 정돈되고 안정되어 만들어진 자상한 선율이었다. 눈이 둥그렇게 떠지며 상대는 감탄사를 흘린다.
“이것만으로도 바로 곡을 떠올리는 건가요? 굉장해요!”
꾸밈없는 감탄사에 레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진실을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이런 느낌으로 전개시키고 싶어. 일단 얼추 만들어 보고 보내줄게. 마음에 들면 그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고. 아, 가사는 세나에게 맡겨도 돼?”
“‘세나 선배’ 말씀이시죠?”
입을 가리며 쿡쿡 웃는다.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의외로 수다스러운데, 스오~”
“물론 ‘리더’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지만요.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리더’. 어머, 너무 건방졌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공주님은 웃는다.
“츠카사 씨는 선배들이 부담 없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 그대로 축하만 하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저는 알아요. 츠카사 씨가 얼마나 나이츠의 곡을 좋아하고 있는지, 그이의 선배들을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지요. 츠카사 씨가 말하는 ‘리더’가 얼마나 특별한지도요. 그래서 식장을 그가 좋아하는 곡으로 꾸며주고 싶었어요. 이건 저의 서프라이즈니까요, 알죠? 그이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츠카사에게 소개 받을 때와는 사뭇 다른 인상이었다. 공주님보단 퀸. 체스판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니지만 왕의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반려.
그녀는 명함을 내밀었고 거기에 쓰인 메일 주소로 곡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핸드폰으로도 연락을 주시면 바로 확인할게요. 저도 너무 기대가 되네요.”
레오는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이 성은 곧 스오로 바뀌겠지. 그리고 그 기념비적인 날엔 마침내 접힌 레오의 감정이 곡으로 날아와 봄 끝에 젖어드는 마지막 벚꽃처럼 식장에 감돌다 천천히 질 것이다. 높은 힐과 검은 구두들 사이에 떨어질 오랜 감정의 끝을 맞이할 준비는 되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결혼 축하해.”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 뒤로 다른 얼굴이 보였다. 정말 닮았다, 스오 츠카사와 그녀는.
식장에서 곡을 듣고 웃음을 지을 자신의 어린 기사를 떠올린다.
명곡이 태어날 것이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어쩐지 기쁘지 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