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을 나갔다 오면 으레 하는 말에 이어질 익숙한 대답을 기대했지만 들리지 않는 것이 오늘의 이변이었다. 부츠 끈을 풀던 레오는 고개를 들었고 이내 침대 위에 힘없이 늘어진 인영을 보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스오?"
레오의 유일한 동거인은 그가 나갔다 올 때마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고 반가히 맞이하거나 자신의 손이 닿는 한에서 최대한의 청소를 하곤 했었다. 아주 가끔 잠들어 있기도 했지만 얕은 잠이었는지 깜박 잠들었다는 등의 말을 하며 금방 일어났었는데.
목소리를 더 높이며 급히 츠카사에게 다가가려던 레오가 멈칫했다. 침대 위에 누워있던 츠카사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손을 두어번 젓는 걸 보고 난 후였다.
"여기 오기 전에 먼저 손 씻어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레오는 싱크대에서 손을 씻는둥 마는둥하며 츠카사의 상태를 살폈다. 츠카사는 여전히 침대에 고개를 묻은 채로 조금 빠른 숨을 내쉬고 뱉고 있었다.
"감기예요. 두통이 좀 심한데.... 감기약 있어요? 없으면 사와야 할 것 같아요."
레오는 뒤늦게 구급 상자를 뒤졌고 고개를 저었다.
"금방 다녀올게."
"부탁할게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나서 레오는 망설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약국과 마트를 빠른 걸음으로 오가며 감기약은 물론 쿨시트와 이온 음료까지 사서는 바로 츠카사가 기다리고 있을 원룸으로 들어갔다.
츠카사는 아까와 다르지 않은 모양새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번에도 손 씻고... 응, 착해요. 고마워요."
아까와 마찬가지로 레오는 건성으로 손을 씻었지만 츠카사는 거기까지 지적하지 않았다. 레오가 내민 물과 약을 받기 위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약을 먹었다. 레오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이마와 뺨을 차례로 만졌다. 손바닥 아래로 닿은 이마는 아주 뜨거웠다. 쿨시트를 꺼내어 붙여주자 츠카사는 뜨거운 열기로 촉촉해진 눈가로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스오, 열이 많이 나."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고 뉴스에서 그랬어요."
"왜지? 스오는 밖에 나간 적이 없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환기를 잘 안해서? 요즘 계속 창문 닫기만 했지?"
"그럴 수도 있어요."
"혹시 잠옷이 얇아? 더 두꺼운 걸 샀어야 했나."
"당신은 추위를 많이 타서 온도를 많이 올려놓잖아요. 괜찮아요. 운이 없어서 걸린 걸 거예요."
평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는 불안을 감추지 않은 채 레오가 내뱉는 말들을 차분히 받아준다. 그간 먹었던 메뉴들까지 거슬러 올라가던 레오는 한숨과 함께 츠카사의 손을 잡았다. 열이 오른 그 손이 따뜻하게 맞잡아 주었다.
"...너를 병원에 보내고 싶지 않아."
"저는 밖에 나가도 레오 씨만 보겠지만 당신은 그래도 불안하겠죠? 저는 당신이 불안한 게 싫어요."
"스오를 믿고 싶지만 믿을 수가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괜찮아요, 제가 레오 씨를 믿으니까."
열이 올라 발그레해진 볼 위로 다정한 미소가 덧그려져 있었다.
"이리와요, 신뢰의 포옹을 해줄게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츠카사가 손을 빼고 양손을 넓게 벌렸다. 사슬이 그에 맞춰 절그럭 거렸다. 츠카사의 오른쪽 손목에 걸려있는 수갑에서 나는 소리다. 그 한쪽은 침대 다리에 길게 연결되 있는 걸 습관적으로 눈으로 쫓던 레오는 다시 츠카사를 보았다. 그는 열이 올라있으면서도 용케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레오는 주저하다가 츠카사를 끌어안았다. 팔이 레오를 마주 안았다.
"약을 먹었으니까 푹 자면 나을 거예요. 걱정 말아요."
"스오, 몰래 나간 거 아니지?"
"제가요? 여기를요? 농담하지 마세요. 스스로 낙원을 벗어나는 어리석은 자가 있을까요? 그런 멍청이들이 있더라도 저는 그렇지 않아요."
귓가에 속삭이는 숨이 뜨거웠다. 츠카사는 잔기침을 하고 레오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당신이 오랜만에 일찍 들어온 날인데, 애석하게도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요. 생각보다 몸이 노곤해요."
그러면서도 츠카사가 힘없이 기대어오기에 레오는 불안하게 남자의 건강과 해방을 저울질한다. 역시 나가게 하는 건 싫다. 밖에서 그를 제어할, 그러면서도 남에게 들키지 않을 구속구를 레오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대로 그가 낫지 않아서, 더, 더, 더 아파져서 정신을 잃어 아무것도 인지를 못하게 될 때에 그 때야 병원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감기는 옮기면 낫는다고 했지."
"그건 속설이잖아요?"
"유서 깊은 속설이니까, 어느 정도 효과는 보증되지 않을까."
"음, 당신이 아픈 건 싫지만 당신은 병원에 갈 수 있지요."
"그렇지? 해서 손해 볼 건 없어. 스오, 입 벌려."
"네, 의사 선생님."
열에 들떴으면서도 쿡쿡 웃던 그가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얼굴을 감싸쥔 레오가 곧바로 그의 입을 파고들었다. 손에 닿는 뺨도, 느릿하게 허리를 감싸는 손도, 바로 얽혀드는 혀도, 츠카사와 맞닿는 모든 것이 뜨거웠다. 츠카사의 감기가 자신에게 오도록. 그래서 그가 나갈 일이 없도록. 이 작은 방에 가둬둔 그처럼,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가 되도록 깊게 파고든다. 바싹 붙인 몸이 달아올랐다. 열이 오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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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감금 병자예요.
단칸방에 감금하는 거 로망인 거 같아요. 레오가 안그래도 좁은 방 지저분하게 할 테니 청소는 츠카사가 하는 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