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레오 전력 - 할로윈
*츠카레오
*전력이긴 한데... 시작한 시간도, 걸린 시간도 전력이 아닌..... 죄송합니다...
*주제는 할로윈입니다.
“...그거 정말 굉장한 분장이네요. 아니, 분장이 아니고 특수 효과라고 해야 하나요?”
스오 츠카사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다. 지금의 시대는 사람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과학이 발전하고 있고 이것도 그런 특수 장치의 일환일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츠카사는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상대에게 침착하려 애쓰며 말했다.
“아주 훌륭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다음 Halloween Party에 써먹고 싶어서 그러는데 말해줄 수 있나요? 어떻게 한 건가요? 발밑에 sha... 그림자를 사라지게 한 거 말이에요.”
츠카사는 침을 삼켰다. 얼른 이 무시무시한 Magic의 Trick을 밝혀주세요! 심장이 터질 것처럼 아우성치는 와중에 상대방은 멀뚱히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어라, 어디 갔지 그림자.”
“Noooo-!! 정말로 ghost란 말입니까? 하지 마세요, 진짜 무섭습니다!”
“생긴 건 네 쪽이 더 유령인데. 그보다 뭐야 그 영어는. 외국에서 온 유령? 헬로~?”
“저는 Halloween Live에 걸맞은 옷을 입었을 뿐이니까요! 가장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영어는 유학을 다녀와서 그렇습니다!”
“저기, 좀 조용히 해봐. 나도 혼란스럽거든.”
남자는 팔짱을 낀 채로 인상을 썼다. 선명한 주황색 머릿결이 엉성하게 묶여 목옆에서 찰랑댄다. 어떻게 봐도 살아있는 사람 같다. 그림자가 없다는 어마어마한 위화감만 제외하고는.
“으음, 무리다.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아! 그러니까 분명 작곡을 하고 있었어! 해가 져서 글씨도 안보여서 불빛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밖에 기억이 안나. 이 다음은 망상의 영역이다! 어디에서 그림자를 흘려버린 바보지만 천재의 이야기..!”
“자신의 신변을 망상으로 처리하지 마세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츠카사는 남자의 등 뒤에 숨겨져 있을 무언가의 첨단 장치와 어딘 가에서 촬영하고 있을 몰래카메라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문명의 이기와 속임수가 담긴 장치는 전혀 보이지 않고 지극히도 평범한 담벼락만 펼쳐져 있었다.
“저, 저기 당신이 누군지는 생각나나요?”
“나? 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구나! 내 이름을 기억하고 돌아가 줘! 나는 츠키나가 레오! 그리고-.”
두 팔을 넓게 펼쳤던 남자는 그대로 굳는다. 한참 후에 그 팔이 망연자실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하나도 기억이 안나. 이거 정말 신기한 감각이네. 이름만 당연하게 떠오르고 나머지는 전부 없어. 백지 상태야.”
‘맙소사, 정말 ghost입니까!’
남자는 무언가 주절거리며 아까 말한 망상인지 무언지를 전개시키는 것 같다가도 이내 잠잠해졌다. 아까보다 풀죽은 모습이었다.
“-진짜 죽었나봐.”
“사, 사람은 언젠가 죽으니까요.”
츠카사는 이게 정말 위로가 맞은 건지 고민했지만 유령, 츠키나가 레오는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듯 했다. 츠카사는 새삼 그가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골목길은 큰 길과 연결되어 교통량이 적은 편이 아닌데다가 길이 기울어져 있어 교통사고가 잦은 편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아마 그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어떤 사고가 있어서라면...
죽은 이유를 알아서 어쩌자는 건가. 츠카사는 고개를 붕붕 젓고는 그에게 말했다.
“교복을 입고 계시잖아요? 그렇다는 건 저와 같은 학교... 유메노사키에 다니셨다는 말이네요. 넥타이를 보니 검은색... 검은색? 학년마다 넥타이 색은 정해져있지만 검은색은 없을 텐데. 혹시 여기에 어느 정도 있었는지 알고 계시나요?”
“글쎄, 정신차려보니 여기에 있던데. 네가 말 걸어서 여기 서 있다는 걸 눈치 챈 느낌이려나. 그 전에는... 으음, 이것도 기억나지 않아. 상관없나? 어차피 죽었고.”
“포기는 일러요. 벌써 두 개나 알아냈잖아요? 당신이 유메노사키 학생이라는 것과 작곡을 하고 있다는 것 말이에요. 학교에 작곡과는 없지만 기록을 찾아보면 당시 작곡을 한 학생이 있을 거고, 그게 바로 당신일 거예요.”
당사자인 레오보다 츠카사가 어쩐지 필사적이었다. 왠지 그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랬다간 악령 비슷한 것이 돼서 여기에 계속 남아있을 수도 있고. 유령을 본 건 이게 처음이지만 어쨌든 이건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모습이다. 성불을 해야 그에게도 좋은 게 아닐까.
그런 츠카사를 레오는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잘 연마된 보석 같은 녹색 눈은 영화에서 흔히 나오곤 하는 유령의 기괴한 눈동자와는 전혀 달랐다. 유령은 말없이 눈만 깜박이다가 뭔가 만족한 듯 눈꼬리를 접으며 웃는다.
“그렇다면 내가 누군지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네.”
“네, 그렇죠. 사실 이름만 정확하다면 당신이 누군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을 조금만 주신다면 제가 당신 앞에서 좔좔 읊을 수도 있어요.”
“그래? 하지만 오늘밤이 지나면 난 사라질 것 같은데.”
츠카사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어째서요?”
“왠지 그런 예감이 들어. 오늘은 할로윈, 죽은 이들이 찾아오는 날이라잖아. 네가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것도 그래서라고 했으니까. 여기 온 것도 할로윈 특별 서비스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 그러니까 가짜 유령 씨가 노력하지 않아도 난 자연히 사라질 것 같아.”
“그럼 당신은... 괜찮으신가요?”
“내가 괜찮지 않을 게 뭐가 있어? 다만 아쉬울 뿐이지. 이 모든 감각들을 노래로 만들고 싶은데 보다시피 아무것도 할 수가 없거든! 펜도 없고 종이도 없고 이곳에서 멀리 움직일 수도 없어. 정말 우주적 손실이야...”
과장되게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던 그가 다시 눈을 반짝였다.
“그런 의미에서 네가 좀 도와줘야겠어.”
“예? 뭐, 뭐를요?”
“지금 생각나는 곡을 노래할 테니 적어줘! 아니면 기억해 두던가. 녹음도 괜찮아! 시작한다?”
“자, 잠시 만요! 저도 일단 가진 게 없... 스마트폰이 있긴 하군요. 이걸로 녹음을 한다고 쳐도 당신의 목소리가 녹음이 될까요?”
“오옷, 유령의 목소리를 녹음...! 이것도 굉장한 인스피레이션이네~! 하지만 녹음이 되지 않는다면 곤란한데. 그래, 이렇게 하자. 내가 먼저 노래를 할 테니 가짜 유령 씨가 따라 해줘. 그 목소리를 녹음하면 되지!”
츠카사는 다시 그를 멈춰 세우려고 했지만 남자는 듣지 않았다. 곧바로 한 손을 펼치더니 그가 머릿속에서 만들었을 음들을 거침없이 뽑아내기 시작했다. 막무가내인 그에게 넌더리를 내려던 것도 노래의 시작과 함께 사라졌다. 츠카사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한 유령의 즉흥곡에 귀를 기울였다.
저편에서 아직도 소란스러운 학교의 머나먼 소음과 별이 이상하게도 밝은 검은 밤과 오렌지색 가로등 조명이 어우러져 음이 섞이고 하나가 되어간다. 츠카사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츠키나가 레오라는 이름을 가진 유령의 무대로 변해갔다. 레오는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음표들을 환상적인 음으로 만들고 있었다. 멜로디는 무겁지 않게 통통 튀며 주황색 등이 차례로 밝혀지는 할로윈 무대로 인도했다. 등장인물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는 디즈니의 뮤지컬 같은 그의 곡은 결국 아이돌의 노래였다. 남색과 주황색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무대, 뼈를 달가닥 거리며 해골들이 춤을 추고, 기괴한 웃음을 짓는 잭 오 랜턴의 오렌지 불빛을 박쥐 날개가 이따금 가린다. 유쾌한 할로윈 파티였다. 유령의 목소리와 노래가 그렇게 만들었다.
노래가 끝나자 츠카사는 열렬하게 박수를 쳤다.
“굉장해요! 정말 즉석에서 떠올린 겁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분명 천재예요!”
“말했잖아, 나는 천재라고. 죽었지만!”
익살스럽게 말한 그가 츠카사를 향해 말했다.
“기억했어? 부를 수 있지?”
“아-, 제가 부르기로 했었죠? 죄송합니다, 그게 전혀... 감탄하기 바빠서...”
“안 돼, 안 돼.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해줘! 그 이상한 분장도 지금은 풀어둬. 노래하는 거에 집중해!”
남자의 지적에 츠카사는 허둥지둥 자신의 머리와 얼굴에 엉켜있던 붕대를 풀었다. 레오는 츠카사의 얼굴을 꼼꼼히 살피다가 이내 씨익 웃었다.
“뭐야, 이 모습이 훨씬 보기 좋은데? 예쁜 얼굴을 가리다니 잘못된 분장이네. 그럼 다시 시작한다. 한 소절씩 할 거니까 제대로 해줘.”
유령이어서 제멋대로인걸까, 원래 제멋대로인 사람인걸까. 다시 울리는 남자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츠카사는 아쉬워졌다. 그가 죽은 것에 대해, 살아있을 때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떻게든 된 것 같네.”
역시 레오의 목소리는 녹음되지 않았다. 스마트폰은 레오를 따라 노래를 엉성하게 따라 부르는 츠카사의 목소리만 외롭게 재생했다. 자신의 어색한 노랫소리에 츠카사가 얼굴을 붉히는 것과 달리 레오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좋아, 그럼 이 곡을 잘 부탁해! 내 이름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냥 네가 쓴 곡으로 해도 되니까.”
“무슨 소리입니까. 그럴 순 없고, 그러지도 않을 거예요.”
“그것도 네 마음대로야. 그건 이제 내 손을 떠난 곡이니까. 그나저나 아까운걸. 내가 살아있었다면 너를 내 유닛으로 스카우트 했을 텐데.”
츠카사는 가늘게 눈을 좁히며 웃는 그를 쳐다보았다.
“Unit.. 말씀이십니까? 그러고 보니 어떤 유닛에 있으셨지요..?”
레오는 입을 다물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가 했더니 짧게 박수를 친다.
“맞아, 이것도 생각났네. 전에 있던 유닛은 기억 안나! 난 새로운 유닛을 만들려고 했어. 기사도 정신을 주력으로 왕 아래 결집된 유닛. 위풍당당하고 아름답게 검을 휘두르는 기사들이란 느낌으로!”
“기사라면 knight입니까? Marvelous! 멋진 concept의 유닛입니다. 저라면 당장 가입했을 거예요.”
“너 립서비스가 꽤 괜찮은데! 하지만 재학생이라면 분명 유닛에 소속돼있지?”
“일단은 그렇습니다. 이 학교에선 solo 활동을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좀 의문입니다. 이 학교에 온 건 대중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들과 같은 시선을 갖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의 학교는 탐탁치가 않네요. 방만하다고 해야 할까요. 나태와 비슷한, 그런 기류가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유닛도 자신의, 아이돌로서의 실력 향상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든 유닛이 다 그러한 분위기니 저희 유닛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요. 지난 선배들의 활약으로 유메노사키 출신이 아이돌계의 보증서 같은 것이 돼버렸지만 그건 말 그대로 선배들이 일구어낸 길이지, 이대로 가다간 그 보증서의 의미도 분명 없어질 겁니다.”
그건 츠카사가 계속 품고 있던 고민이었다. 종교에 의탁해 기도를 올리는 게 이런 기분일까. 츠카사는 제법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는 할로윈의 특별한 손님에게 저도 모르게 쌓아두었던 말들을 줄줄 풀어내고 있었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고 저는 이제 학교의 최고 학년이 되겠죠. 그동안 제가 쌓아온 걸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적당한 Live와 적당한 Performance. 선배들은 어차피 학교 유닛은 임시 유닛일 뿐, 진짜 무대는 이곳이 아니니 힘 뺄 필요는 없다고 하셨지만... 저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 걸까요, 같은 생각이 들어서.”
“흐음, 그래도 너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 거 아냐? 정말 나태한 쪽은 그런 생각조차 못하잖아.”
“...개인적으로도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연습실에 저 밖에 없던 일들이 계속 반복되니 쌓이는 건 자괴감뿐인 것 같아요. 오늘의 Live만 해도... 하아. 전 어째서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뭐, 어때. 내가 들어준다고 해결될 건 없지만 가짜 유령 씨의 기분이 풀릴 지도 모르고. 훌륭한 대나무 숲이잖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쳐보라고! 입 밖으로 내서 결심이 서는 문제도 있으니까.”
“그런가요? 사실 조금 가벼워진 기분도 들어요.”
“그치? 너는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고들 하니까!”
레오가 손을 뻗어 츠카사를 격려하듯 어깨를 두드리려했지만 그 행동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허망하게 몸을 통과한 손을 내려다보던 레오가 머쓱하게 손을 빼냈다.
“여기 자기가 죽은 지도 모르는 사람보다 낫잖아? 그러니까 음, 힘내!”
“...왠지 거대한 우주 속의 조그만 지구인이 된 것 같네요. 당신 앞에선 되게 하찮은 고민처럼 느껴지는 게... 저 츠키나가 씨라고 하셨죠. 츠키나가 씨도 힘내세요, 라는 말은 뭔가 이상하네요. 아, 생각해 보니 무례하게도 제 소개를 안했네요. 저는...”
“잠깐 잠깐!”
투명하지 않지만 분명 츠카사를 가볍게 통과할 손을 레오는 붕붕 휘저었다.
“너도 잊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죽은 사람이야. 귀신에게 이름을 함부로 알려주려고 하다니 조심성이 너무 없네! 몸을 뺏길지도 몰라!”
“...몸을 빼앗을 생각이신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예쁜 얼굴을 가지는 건 나쁘지 않을 지도~”
“츠키나가 씨도 예쁜데요...”
“유령에게 얼굴 칭찬을 해봤자!”
그렇게 말한 레오가 몸을 일으키고는 기지개를 쭈욱 폈다. 손가락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굽이쳐 들어오는 걸 츠카사는 멍하게 바라보았다.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이제 가봐. 말 걸어줘서 고마워. 덕분에 새로운 유작이 탄생했어!”
“그렇게 된 셈이네요...”
츠카사는 손 안에 쥐인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생생한데, 이렇게 목소리가 가까운데, 유령이라니. 츠카사는 손을 뻗어 그를 만지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다음에 보자는 말도 이상하지? 다음에 또 보면 그건 악령이 된 느낌이고. 만나서 즐거웠어, 라는 진부한 인사 정도로 해둘까.”
“저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라는 인사말로 괜찮을까요. 당신을 만나서 정말로 즐거웠으니까요. 유령이든 무엇이든 간에.”
“응, 그거면 충분해.”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 얼굴 다음에 보이는 건 동그란 뒤통수였다. 그는 다른 곳을 보며 또 다른 노래를 중얼거렸다. 아까와 다른 곡이다. 작별의 노래가 흐르고 있어도 츠카사는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결국 다시 말을 걸었다.
“-츠키나가 씨.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으응?”
“당신이 만들려고 한 유닛의 이름이 정해져 있었다면, 알려주실 수 있나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인지 레오의 움직임이 일순 굳었다. 그에게서 일어난 변화를 츠카사는 숨죽여 보았다. 내내 유쾌하던, 그러면서도 때때로 무표정이 거닐던 얼굴이었다. 태어나지 못한 유닛에 대한 아쉬움과, 그보다 더 큰 감정. 그가 그렸을 이상의 유닛과 스스로를 천재라 칭하는 자의 자긍심이 담긴 웃음이 레오 얼굴에 천천히 자리잡는다. 리더의 얼굴?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자신감이 넘치는, 어찌 보면 오만해 보이는 츠키나가 레오는 이 순간만큼은 이 사람은 그의 기사들이 모시는 왕이었다. 츠카사는 그 왕과 시선을 마주한다. 무대 밖으로 밀려난 가엾은 왕.
그가 입을 벌렸고, 곧이어 츠카사에게만 닿았을 단어가 할로윈 밤의 거리에 짧게 흘렀다.
죽은 자들이 찾아오는 10월의 마지막 밤. 기원의 날이 지나고, 달력이 새로운 달의 첫날을 고하고, 담장이 길게 늘어져 있는 길거리엔 어둠이 찾아와도 밝은 주황색 머리에 녹색 눈을 가진 유령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
츠카사가 소식을 듣게 된 건 하루 전날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것을 애써 참고는 그보다 한 살 많은 선배와 한 살 적은 후배들이 펼치는 반례제의 무대를 보았다. 화려한 조명과 조금의 눈물과 청춘. 관람객인 츠카사는 조금은 메마른 감정으로 그것들을 지켜보다가 어쩌면 저 무대에 선 자신과 어느 사람을 상상하고는 웃고 말았다. 머릿속의 잡상은 다시 그를 한 소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어쨌든 츠카사는 외부인이었다. 첫 날은 가족들에게 양보해야 할 테고. 몇 달 만의 조우를 츠카사가 방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그는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츠카사는 몇 번이고 왔던 흰 복도를 내딛었다. 익숙해진 걸음이 헤매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갔다. 츠키나가 레오. 그의 이름이 써진 문 앞에서야 츠카사는 숨을 집어 삼켰다. 긴장된 호흡이 코끝을 스친다.
-똑똑.
정중한 노크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속으로 10초를 세고 츠카사는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문을 열었다. 제일 먼저 들린 건 바이탈 사인의 규칙적인 신호. 선과 연결된 이 방의 주인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코마 상태에서 회복된 지 이틀. 어제도 몇 분만 간신히 깨어있고 다시 잠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도 몇 분의 의식 회복과 다시 수면. 의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깨어있는 시간도 길어질 거라고 했다. 남은 것은 순조로운 회복 뿐.
새하얀 침대에 감싸인 츠키나가 레오는 더 이상 유령이 아니다. 그 기묘한 밤을 지내고 츠카사는 유메노사키에 다녔던 작곡을 한 츠키나가 레오를 수소문했다. 진실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츠키나가 레오는 유메노사키 졸업생이 아닌 재학생이며 학년은 1학년, 그리고 여름 방학을 맞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인해 의식불명 상태. 그는 기계와 이어진 생명줄을 통해 간신히 이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그의 가족에게 연락을 넣어 좀 더 좋은 시설과 치료를 권했고 그 대신 츠카사는 레오의 상태에 대한 소식을 계속 들을 수 있었다.
어두운 밤의 스테이지를 주도했던 레오는 정반대의 세계에서 숨을 불어넣고 있다. 몇 번이고 봐왔던 잠자는 모습이지만 지금은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깨어나면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그 할로윈 밤을 기억하냐고 물을까. 당황할지도 모르는 그에게 자기소개부터 해야 할까. 레오를 보며 했던 많은 생각들이 점점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무대는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츠카사의 모든 말들은 몇 달 간의 고민 끝에 결국 그에게 전해질 것이다. 감긴 눈이 아닌 뚜렷한 녹색 눈과 마주하며 할 말을 츠카사는 고대하고 있었다.
'불초하지만 이 츠카사를 기사로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Knights의 일원으로.'
-
나이 역전 츠카레오가 보고 싶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연상연하 역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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