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련님 츠카사와 호위무사 레오가 붙어먹는 노근본 AU
* 츠카사 신년 카드와 레오 신규 카드 조합 보고 뽕차서 썼습니다..
* 그렇고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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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리퀘4 리츠마오
* 리츠마오
* 과거 날조
* 듀얼 네타가 있긴 한데 사소합니다..
뜨거운 여름 해가 마지막 열기를 쥐어짜는 오후, 이사라 마오는 문 앞에 서 있었다. 철제로 만들어진 문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금속이 흘끗 보였다. 조금만 쥐고 있어도 강한 쇠 냄새가 묻어날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지만 이 집 주인은 집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몇 년 전에도 이런 상태였다는 걸 떠올리며 마오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사실 문 상태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분산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누렇게 변색된 초인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벨소리가 길게 울렸다.
어릴 적, 지금같이 교복을 입기도 전 어린 나이에 마오는 이 집이 있는 골목에서 놀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줘 차도 잘 날아가는 고무공을 또래의 친구들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선명한 연두색의 공은 친구의 다리에 맞고 힘차게 날아올라 담을 넘어 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 넘어갔네. 귀찮아졌다며 마오가 친구들을 돌아볼 때 그들은 마오와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이 금세 겁먹은 아이들의 얼굴에 마오가 왜? 라고 물었고 아이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저기, 괴물이 나오는 집이래.’
‘하?’
저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들은 마오의 그런 심드렁한 반응을 신경도 안 썼다. 귀신이라던데. 아니야 좀비랬어. 옥신각신하는 얘기를 들으며 마오는 다시 집을 돌아보고 말했다.
‘그 옆이 우리 집인데.’
아이들은 동시에 말을 멈추었다. 마오는 손을 뻗어 한창 귀신의 집이라 떠들어대던 집과 담을 마주한 자신의 집을 가리켰다. 그리고 반복했다. 우리 집. 아이들의 눈이 더 커졌다.
결국 공 가져오기 담당은 마오가 맡게 되었다. 항상 지나다니는 익숙한 골목이지만 문 앞에 서는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마오는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담장이 무슨 색인지도 몰랐다. 오른쪽에도 집이 있고, 왼쪽에도 뒤에도 앞에도 집이 있는 그런 주택가에서, 인사도 제대로 나눈 적 없는 이웃집에 신경을 쓰기엔 마오 주위엔 재미난 게 넘쳤다.
당장이라도 뭐가 나올 것처럼 굴고 있는 친구들 때문에 지금까지 별 생각 없던 마오도 조금은 망설여졌다. 하지만 놀이공원에나 있을 호러 하우스가 집 옆에 있을 리 없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마오는 손을 높게 뻗어 제 키보다 위에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찢어지는 것 같은 음이 방문을 알렸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오는 두어 번을 누르다가 이 집에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에 부딪혔다. 이대로 공을 버리고 가기엔 그들의 공놀이는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망설이던 마오는 철문을 밀어 보았다. 쇠가 서로 비벼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끼기덕 열렸다. 마오는 뒤를 돌아보았다. 유독 음산하게 들리는 소리에 겁을 집어먹었는지 아이들은 더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 있었다. 응원하는 마음과 말리는 마음이 한데 뒤섞인 얼굴들을 보며 마오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은근히 생겼던 공포심도 왠지 사라져 마오는 성큼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바로 옆집인데도 딴 세상 같았다. 마오의 발목만큼 자라난 풀들이 마당에 한가득 자리 잡고 있으면서 간간히 들꽃들이 제멋대로 피어 있었다. 그 야생의 잔디들 사이에 문으로 이어진 흰 돌들은 을씨년스럽게 현관까지 이어졌다.
‘실례합니다-’
혹시 몰라 크게 말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왼편에 보이는 커다란 거실 창문은 그만큼 커다란 커튼으로 빈틈없이 닫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적막한 풀숲에 혼자 색을 빛내며 덩그라니 놓여 있는 공을 바로 발견한 마오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게 자란 풀이 운동화에 밟혀 파사삭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까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골목인데 벌레 하나 울지 않는 침묵이 가득했다. 마오는 공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거실의 거대한 커튼이 얼핏 흔들렸다. 쿵쾅거리는 심장과 달리 발은 얼어붙은 것처럼 그곳에 못 박혔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창문을 보던 마오는 주인이 있다 하더라도 사정을 밝히면 된다는 걸 겨우 생각해냈다. 순식간에 말라붙은 목으로 말을 꺼내려던 마오는 집이 여전히 조용하다는 걸 불현 듯 깨달았다. 커튼이 움직인 건 착각일 수도 있다. 눈을 깜빡이며 열심히 창문을 바라보았지만 움직이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조금 후에 마오는 조심스레 다리를 뗐다. 마오가 잔디를 헤치며 문가로 갈 때까지도 그를 놀래킬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통칭 괴물의 집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어 마오는 한숨과 함께 문 밖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마오는 그의 여동생이 수선을 피우며 그녀의 엄마에게 옆집 얘기를 꺼냈을 때 책에 여전히 눈을 고정한 채로 말할 수 있었다.
‘그거 헛소문이던데.’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샐쭉해진 목소리로 여동생이 물었다.
‘오빠가 어떻게 알아?’
‘들어가봤으니까.’
가볍게 대꾸한 마오가 쇼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봐봐.’
동생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간 마오가 창문 너머의 집을 가리켰다.
‘그냥 멀쩡한 집이야.’
‘흐응.’
그의 동생은 궁금했는지 열심히 집을 쳐다본다. 창문이 열리기라도 기대한 모양이지만 꼭 닫힌 창문엔 귀신의 집답지 않은 얇은 흰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빠 방이랑 딱 마주보네.’
2층의 누가 사는지 모를 그곳의 창문은 시종일관 닫혀있지도 않았다. 저녁의 느긋한 바람을 맞으며 흰 커튼이 가볍게 살랑대는 걸 본 적도 있었다. 지금은 굳게 닫힌 창문을 한참을 바라보던 여동생은 ‘에이’ 라며 창가에서 몸을 뗐다.
‘그래도 사람 있는 거 본 적 있어?’
‘...아니 딱히.’
‘괴물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보면 꼭 말해줘.’
아마 마오가 보게 될 광경은 볕 좋을 때 이불을 두들기는 그런 모습 같은 걸 테지만 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집은 그저 정원 관리를 안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고 아마 집주인은 또래의 아이가 없어서 그런 소문을 모를 거라고 어린 마오는 결론을 내렸다. 그날도 평화로운 동네의 풍경 속에 완벽히 녹아있는 옆집을 보며 마오는 만약 옆집에서 정원 청소를 시작하면 조금이라도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후 마오는 옆집을 도와주게 되었다. 그가 생각한 청소 같은 자질구레한 용무와는 전혀 다른 일로,
주말, 다 외출을 해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좋을 대로 늘어져 있던 마오는 창문에서 떨어지는 한낮의 빛에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났다. 커튼을 잡다가 저도 모르게 창문 밖 옆집으로 시선이 갔다. 웬일로 2층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마오는 눈을 크게 떴다. 바람에 나부끼는 흰색 천 너머로 작은 손이 보였다. 바닥에 힘없이 늘어진 손을 따라 둥그런 검은 머리도 마찬가지로 바닥에 미동 없이 한참을 있었다.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쓰러져 있다는 건 확실했다.
조용한 집에선 마오가 도움을 청할 사람들은 없었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안절부절못하던 마오는 결국 집 밖으로 나왔다. 담쟁이가 가득한 벽을 따라 달린 마오는 며칠 전에 섰던 문 앞에 섰다. 초인종 소리가 집 안을 울려도 답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있는 건 확실했다. 아이의 손에 떠밀린 문은 역시나 거슬린 소리를 냈지만 그를 들여보내 주었고 마오는 그대로 달려나갔다.
‘계세요? 옆집 사람인데요-!’
길게 뻗어간 목소리는 옆집의 그 무엇도 깨우지 못했다. 마오는 결국 망설이다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여름 해에 느긋하게 데워진 손잡이를 돌리니 문은 걸리는 것 없이 쉽게 열렸다. 문틈으로 바깥의 햇살이 수선스럽게 쏟아졌지만 신발장을 가로질러 복도까지만 뾰족하게 드리우곤 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밖의 뜨거운 공기와 대조적으로, 에어컨이라도 튼 것처럼 싸늘한 공기가 가득해 팔에 소름이 돋았다. 무겁게 덮인 커튼때문에 어둑한 낯선 집엔 이질적인 거대한 피아노가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그의 친구와 여동생이 말하던 괴물의 집이라는 말이 가슴에 턱턱 박혔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문만 잡고 있던 마오는 문득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작은 운동화를 발견했다. 마오가 신고 있는 것과 비슷한 크기의 모습은 아까 창문 너머로 본 손도 같이 떠올리게 했다. 자신 또래의 아이가 쓰러져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위급함이 마오를 움직였다. 마오는 실례한다고 외치고 문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고 곧장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서두른 발걸음이 계단을 눌렀다.
2층은 1층 보다 훨씬 밝았다. 복도 끝에 열려 있는 창문이 그나마 밖의 빛을 옅게나마 가져오고 있었다. 그 복도에 아이는 쓰러져 있었다. 마오는 한달음에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저기, 괜찮아? 어디 아파?’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에게 대답은 없었다. 한여름인데도 손에 닿은 상대의 피부는 놀랍도록 차가웠다. 덜컥 겁이 난 마오는 쓰러진 몸을 눕히려 애썼다. 엎드려 있던 아이의 얼굴이 복도의 빛에 드러난다. 새하얀 피부에 감겨있는 두 눈, 살짝 벌어져 있는 입까지. 어디의 도련님처럼 단정한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가까이 귀를 가져다대면 작게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감기 걸리면 몸이 뜨거워지는데, 차가워지면 어디가 아픈 거였지? 병원에 갔던 기억을 끄집어 낼 때 상대가 움찔하고 움직였다. 아주 천천히 눈을 뜬 아이가 마오를 멍하니 바라본다. 덜 뜬 눈꺼풀 사이로 진한 붉은색과 시선이 마주치자 마오의 심장이 이유 모를 불안감으로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걸 애써 무시하며 마오는 말했다.
‘난 옆집에 사는데 네가 쓰러진 게 보여서-.’
‘-파.’
아이의 입이 움직이는 걸 보고 마오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 그 소리를 들으려고 고개를 기울였다. 아이가 다시 말했다.
‘-배고파.’
그리고 벌어진 입이 그대로 가까워지는 걸 보았다.
결론적으로 그곳은 괴물이 살고 있는 집이 맞았다.
마오는 눈을 깜박거렸다. 어둠에 잠긴 천장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침대에서 멍하니 일어난 마오는 이것이 자신의 침대가 아니라는 것도 낯선 방에 있다는 것도 금방 눈치 챘다.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인공적인 불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바깥에서 누군가 움직이고 있었다. 달각거리는 소리. 부엌에서 누군가 식기를 만지고 있었다.
마오는 몸을 덮고 있는 푹신한 이불을 옆으로 치우다가 그 침대에 자신 말고 또 한사람을 발견했다. 마오 옆에서 곤히 잠든 얼굴을 발견한 마오는 불현 듯 자신의 목덜미를 눌렀다. 맨살의 감촉 대신 천이 덧대진 것 같은 까슬함이 느껴졌다. 목에 붙어있는 거즈를 어색하게 만지던 마오가 다시 옆을 바라보았다. 붉은 눈동자와 날카로운 송곳니. 아까 일은 꿈이 아니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평하게 자고 있는,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보던 마오는 침대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방과 달리 환한 빛을 내뿜는 거실로 나갔다.
거실엔 그보다 한참이 큰 어른이 있었다. 얼굴은 자고 있던 아이와 비슷했다. 남자는 그를 발견하고 붉은 눈을 곱게 휘며 미소 지었다. 마오에게 일어났냐며 말한 그는 자신을 간단히 소개했고, 마오가 옆집에 살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마오네 아버지보다 어려 보이면서 할아버지 말투를 쓰는 남자는 마오를 식탁 앞으로 안내했다. 꽤나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앞에 두고 사양 말고 먹으라는 소리를 들으니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잡아먹히기 직전의 포식 같은 게 생각났다. 그런 걱정은 배가 굉장히 고픈 어린 남자아이에겐 불필요한 것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들은 남자는 마오에게 여러 얘기를 하였다. 남자의 이름은 사쿠마 레이. 자고 있는 아이는 동생으로 사쿠마 리츠. 이 집엔 두 형제만 살고 있으며 부모님은 외국으로 출장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래, 우리들은 흡혈귀란다.’
목덜미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상처 부위를 문지르는 마오를 보며 레이는 쓰게 웃었다. 레이는 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피가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고, 리츠도 그럴 거라고 말했다. 오늘은 자신이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 리츠가 많이 허기진 상태였다며, 그는 사고라는 표현을 썼다. 그 사고에 대한 사과는 자고 있는 동생 대신 형이 하였다.
‘우리 리츠가 사교성이 적어서 친구가 없는데 이사라 군이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니? 리츠도 이사라 군이 마음에 든 것 같거든.’
도시락이 마음에 든 건 그 내용물이 맛있어서지, 도시락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아닐 거다. 마오를 보자마자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은 리츠가 그를 어느 쪽으로 생각할지는 뻔했다. 마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우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손수 만들었을 음식들을 입에 하나씩 넣고 우물거리면 레이의 웃음이 담긴 시선이 쫓아왔다. 붉은 눈과 창백한 피부. 레이의 손도 리츠처럼 차갑지 않을까.
혼자만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집에 가기 직전 레이는 마오 목에 붙어 있는 거즈를 떼어줬다. 상처도 거의 남지 않았고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아서 정말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해도 될까?’
어른이면서 그런 말투는 비겁하다. 운동화를 뒤꿈치까지 꾹 눌러 신은 다음 마오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바로 문을 열고 도망칠 수도 있지만 마오는 잠 든 리츠를 떠올리고 친구가 없다는 말이 왕왕 울리는 걸 느꼈다. 마오는 시선을 바닥으로 툭 떨궜다.
‘네.’
‘다행이구나. 부디 리츠와 사이좋게 지내다오.’
마오가 알 정도로 기쁜 음색이 느껴졌다.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나가려다가 마오는 다시 레이를 돌아보았다.
‘저, 사쿠마 씨가 흡혈귀인거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게 말꼬리를 흘리며 남자의 반응을 살폈다. 멀뚱히 질문을 듣던 레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예의바른 아이구나. 칭찬인지 아리송할 말을 하며 레이는 길고 하얀 검지를 세워 입에 가져다 댔다.
쉿.
속삭이듯 들린 목소리에 마오는 움찔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괴물의 집에 대한 기억은 거기서 끝이었다. 바로 옆집인 자기 집으로 가서 왜 이리 늦게 들어왔냐며 어머니에게 혼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 속에서 어리둥절해 했다. 방금까지의 비일상 속에 절여지다 온 탓에 한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었다.
어린 마오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비일상이 당연히 일상이 되었다는 걸. 평일 아침엔 자고 있는 리츠를 억지로 깨워 학교로 끌고 가고, 주말 오후엔 여전히 잠들어 있는 흡혈귀 저택의 무거운 커튼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마-군, 졸려. 그렇게 말하며 등에 엉겨 붙는 리츠의 어리광도 익숙해졌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했으면서 유메노사키 학원에선 사쿠마 형제가 흡혈귀인 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커다란 관을 가져다 두고 거기에서 낮잠을 잘 정도면 숨길 의사조차 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그 당당함 때문에 흡혈귀는 컨셉인게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낮을 힘들어 할 뿐이지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어느샌가 잊고 만다. 리츠가 흡혈귀라는 것도, 흡혈을 좋아한다는 것도.
마오는 핸드폰을 들어 몇 번이고 본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와줘.
간단한 문장에 소름이 돋았었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부회장이 “무슨 일이 있나, 이사라.”라고 물을 정도로 얼굴에 드러나 버렸다. 한여름이지만 학생회 실은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회장이 돌아오고 난 후 각별히 학생회실 상태에 신경을 쓴 부회장의 노력은 기온, 습도 유지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 서늘함 속에서 마오는 살을 익힐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고파졌다.
계기는 뻔했다. 트릭스타와 합동 연습 중 스튜디오에서 전학생이 실수로 바늘에 찔렸고 그 피를 리츠가 핥았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난 뒤. 붉은 눈동자가 선명히 발하는 걸 마오는 놓치지 않았고 그 시선과 딱 마주쳤다. 나중에 칭찬해 주기로 했잖아? 마-군. 덜 뜬 눈동자가 작게 휘어지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상도 줄 거지? 송곳니가 보일 것 같아 마오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침 학생회 모임이 있는 날이라 마오는 그 자리에서 먼저 빠져나올 수 있었다. 리츠에게서 빠져나올 수는 없었지만.
아픈 건 누구나 싫다. 특이 성벽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픈 것도 그렇지만 마오는 그 이상으로 하얗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특히 싫었다. 피부를 찢어 그 안에 숨겨진 혈액을 탐하기 위해 준비된 기관은 보기만 해도 소스라칠 정도로 싫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가끔의 흡혈을 허락하는 건 리츠의 어리광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그래도 저번엔 확실히 심했었다. 목덜미를 물어뜯다시피 달려들어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목과 살인 사건의 증거처럼 변해버린 벽지. 눈동자처럼 붉게 핏빛으로 번진 리츠의 입가를 보다가 마오는 기절했었다. 방학이어서 망정이지 학기 중이었다면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으로 등교할 뻔 했었다. 리츠도 정도를 넘어선 건 알고 있는지 그 이후로 잠잠했는데.
이제는 높지 않은 초인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벨소리가 길게 울렸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문을 밀었다. 문은 역시나 잠겨있지 않았다. 열린 대문 사이로 해질녘에 잠긴 집이 보였다.
마오는 괴물의 집에 갇혔다는 걸로 시작하는 호러 게임들을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미궁을 헤매는 주인공은 대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버리고 만다. 그 종막이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기를 마오는 어느 샌가 바라고 있었다. 사실 제일 좋은 건 더 이상 흡혈귀들에게 관여하지 않는 것. 학원 내에선 안그래도 마오를 괴롭히는 문제들이 많았다. 사쿠마 형제들과 관계를 끊으면 성가신 일이 줄어들 테고. 가 합리적인 결론일 텐데 마오는 그러질 못했다.
더 이상 휘말리지 말자고 수없이 생각해도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이게 된다. 마오가 무서워하는 송곳니를 숨기고 나른한 미소를 보내는 자신의 소꿉친구는 빠질 수 없는 마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마 오늘은 그 송곳니를 드러내겠지만. 어두운 집을 우울하게 바라보던 마오는 한숨과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뒤를 따르는 마오의 그림자는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마당에 길게 늘어지다가 문이 닫히면서 그마저도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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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받은 공약 마지막... 제트님의 리퀘 리츠마오입니다. 스바루 커플링일줄 알았는데
이벤트 참여 감사합니다 ><)♡
리츠마오 다이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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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리퀘3 츠카레오
* 츠카레오
* 저지먼트 후 기반입니다. 네타 조심..
종이 치고 학교의 복도가 숨죽인 침묵을 유지할 때, 교실문은 열렸다. 나름 조심스럽게 연 것 같지만 5교시라는 졸음 한가득 기운과 난방기의 나른한 열기로 김장 당하던 학생들은 어떤 자극이라도 간절히 바라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자는 이들을 제외한 모두가 교실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건 교단에서 왔다 갔다 하며 수면 주문을 외우던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아이돌 양성 학교라지만 수업 시간은 제대로 지켜야 하지 않겠냐는 잔소리를 하려던 교사는 교실에 들어온 학생을 보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구나. 츠키나가 군이 수업에 들어오다니.”
고개를 숙인 주황머리 밑으로 소리를 잔뜩 죽인 ‘죄송합니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와서 교실 안의 모두가 술렁였다. 그들이 아는 츠키나가 레오는 절대 저런 소리를 할 인물이 아니다. 교사는 얼떨떨하게 자리에게 앉으라고 말했고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잠시 주춤대다가 자리에 가서 앉았다.
3학년 B반인 나즈나 역시 굉장히 놀라고 있었다. 그 츠키나가 레오가 수업 시간에 참여한 것도 그랬고, 그가 뜬금없이 나즈나 옆자리에 앉은 것도 그랬다. 레오의 자리는 정학과 등교거부라는 오랜 부재로 인해 창가 쪽 맨 뒷자리가 됐을 터였다. 그는 초조하게 책상 아래를 뒤적여 교과서를 이것저것 꺼내더니 옆 책상을 한 번 쳐다보고 영어 교과서를 제외한 다른 교과서들을 집어넣었다. 레오칭이 공부를...? 나즈나는 그의 심적 상태를 우려하는 마음이 되어 옆을 바라보았고 경악했다. 주황색 머리 아래로 보여야 할 고양이 같은 녹색 눈 대신 순한 보라색 눈을 가진 사람은 나즈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눈에 띄게 움찔했다. 나즈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은 츠키나가 레오가 아니라는 것을.
‘너 누구-?!’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니 처음은 아니죠. Judgment 때 뵈었으니.. Knights의 1학년 스오 츠카사라고 합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소리 지를 뻔한 나즈나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던 가짜 츠키나가에게 받은 쪽지였다. 나즈나는 유려한-특히 영단어 부분이- 글씨로 써진 쪽지를 받고는 상대를 흘끗 바라보았다. 어색한 주황색 가발을 걸친 그는 전전긍긍하며 교사의 말을 쫓아 교과서의 페이지를 찾고 있었다. 나즈나는 샤프를 꾹꾹 눌러 써 쪽지에 답했다.
-그 신입쨩? 레오칭은 어디 가고 신입짱이 여기 있는 거야?
-Leader와 내기를 했는데 지고 말아서... Leader가 내건 조건으로 수업을 대신 들으러 왔습니다.
-나이츠 신입이 엄청 진지하다고 하더니 정말이네... 신입짱의 수업은 괜찮아?
-선생님에게 Knights에 accident가 있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쉽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엄청 성실해! 오후 수업은 다 신입쨩이 대신 듣는 거야?
-...아마 5교시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Leader도 그렇게까지 잔악무도한 사람이 아닐 테니...
여러 번 오간 쪽지를 보며 나즈나는 문득 이 성실한 도련님이 승부까지 걸게 만든 내용이 궁금해졌다.
-레오칭은 그렇다 치고 신입쨩은 뭘로 내기 걸었는데?
쪽지를 받은 레오 대역 스오 츠카사는 한동안 펜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받은 쪽지에는
-별 거 아닌 것이라 알려드리기 부끄럽네요. 죄송합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이러면 더 궁금해지는데. 유메노사키에서 정보통으로 손꼽히는 나즈나가 취재의 혼을 태우려고 할 때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페이지는 오랜만에 얼굴 보는 츠키나가 군이 읽어주게.”
움찔 놀란 츠카사는 교과서로 얼굴을 다 덮을 기세로 가리며 일어났다. 3학년 B반은 몇 번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츠카사가 영어 교과서를 읽는 소리와, 너무 유창한 그의 발음에 감동한 교사의 열광적인 박수소리가 한 동안 울려퍼졌다.
*
계기는 우연히 보게 된 라이브 영상이었다.
츠카사도 아라시도 없던 시대의 나이츠의 듀얼 영상은 나이츠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츠카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흑과 백으로 나눠진 전장에서 시작을 알리며 고고하게 울려퍼지는 체크메이트 나이츠. 그 가운데에 츠키나가 레오가 있었다. 아이돌 놀이는 끝났어, 라며 은퇴를 운운하는 지금의 리더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자신만만한 얼굴에는 상대에게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큰 무대 위의 긴장감 같은 건 일절 없었다.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왕의 망토를 걸치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상대를 압도했다. 나이츠를 연호하며 은색 야광봉을 흔드는 관객들에게 앙코르 무대로 화답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화면이 검게 물들어도 츠카사는 움직이는 걸 잊은 채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들의 나이츠는 츠카사가 상상한 것보다 더 긍지 높은 기사들이었다.
물론 지금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츠카사는 그의 왕이 일으킨 저지먼트도, 그에 맞선 나이츠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렇게 드디어 돌아온 그들의 왕은 어째선지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는다. 나이츠의 무기인 곡들을 쉼 없이 써 내려가며 그들을 지원만 할뿐, 무대에서 한 발짝 멀리 떨어져 나이츠를 지켜보고만 있다. 다른 선배들은 그걸로 만족하는 걸까? 다른 이들이 만족한다 하더라도 츠카사는 그러지 못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신입이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츠카사는 츠키나가 레오는 아직 무대에서 내려가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이츠의 리더로서 그들과 같은 무대에 서고, 그가 가진 재능과 퍼포먼스로 나이츠를 더 정점으로 끌어올려줘야 한다.
과거의 나이츠 영상을 보고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츠카사는 레오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은 사람을 발로 뛰어서 찾는 것만큼 시간 낭비도 없었다. 츠카사는 Leader라고 저장된 번호에 전화를 걸었고 그가 부디 스마트폰도 잊고 돌아다니지 않길 바랐다. 다행히 전화를 받은 건 쾌활한 레오의 목소리여서 츠카사는 지금 어디냐고 물어볼 수 있었다.
‘여긴 어디려나~ 정신 차리니 식물들이 잔뜩 있네. 앗, 나 혹시 외계인에게 납치라도?!’
‘그러지 않았길 바랍니다. Leader 그 나무 사이로 흰 담이 보이나요?’
‘보여~ 그렇다는 건 여긴 아직 유메노사키 학원이군! 전화까지 건 거 보니 급한 일이야? 앗 대답하지 마! 망상할 테니까!’
‘네, 대답하지 않을 테니 그 자리에 그대로 계세요!’
전화를 끊고는 가든 테라스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전화를 한 번 더 걸어 레오가 받기도 전에 나무에서 울리는 그의 벨소리를 따라 츠카사는 레오 앞에 당도했다.
목을 감싸는 후드를 입까지 끌어올리고 나무에 쭈그려 앉아있던 그가 츠카사를 향해 살레살레 손을 흔들었다.
“무-서운 부회장이 쫓아오기라도 했어? 꼴이 말이 아니네~”
“이건 그냥 달린 것뿐입니다... Leader의 inspiration은 끝났나요?”
“물론! 스오가 나를 급히 찾은 이유는 이거야. 크리스마스를 맞아 대형 라이브를 기획! 이번 컨셉은 연말에 유행하는 대기업의 기부 천사인 거지! 스오가 돈을 뿌리며 길거리 행진을 하는 것이 주요 퍼포먼스. 다른 멤버는 쓸데없이 돈 많은 황제 폐하와 그 옆에 분홍머리 1학년~ 그래서 스오는 나에게 임시 유닛을 하는 걸 허락 맡으려고 온 거지? 걱정할 필요 없어! 오케이니까!!”
“뭔가요, 그 이상한 concept은... 그런 것 때문에 Leader를 찾은 게 아닙니다.”
“와핫, 틀렸다! 그래서 스오는 나한테 무슨 일~?”
활짝 웃는 그가 츠카사를 올려다 보고 있다. 츠카사는 잠시 말을 골랐다.
“Leader가 Stage에 올라와 주셨으면 합니다.”
“으응? 그건 무리. 벌거벗은 임금님은 부자가 아니니까!”
“그 영문 모를 Live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전 Knights의 Stage에 선 Leader가 보고 싶어요.”
“나는 너희들과 언제나 함께 하고 있는 걸? 내 곡을 불러주는 건 내 기사들이 아니었나?”
“그건 맞습니다만, 곡과 함께 저희를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Leader의 무기를 스스로 휘둘러보고 싶진 않으신가요?”
“아쉽지만 내 무대는 끝났어. 등장이 끝난 배우가 무대에 남아있어선 민폐잖아? 지금의 주역은 반짝반짝 빛나는 너희들이라고.”
“끝이 아니에요! 주역도 바뀌지 않았고요. 모두 Leader의 자리를 남겨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의 나이츠는 내가 없어도 충분해- 아니면, 너희들로는 역부족?”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Leader가 오면 더 압도적인 Stage가 완성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Leader가 적어도 이곳을 떠나기 전에, Knights가 모두 모였을 때 같은 Stage에 서고 싶습니다. 이건 너무 큰 바람일까요?”
찬바람에 식었던 열이 다시 발하는 게 느껴졌다. 츠카사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두 뺨이 붉게 달아오른 것은 알 수 있었다. 레오는 답을 보류하고 멀뚱하게 츠카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츠카사는 그의 생각을 엿보려고 열심히 녹색 눈을 바라보았지만 그 어떠한 감정의 조각도 줍지 못했다. 레오가 팔짱을 끼며 갸우뚱 한다.
“세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었어?”
당신의 옛 라이브 영상을 봤다고 고백해야 할까 츠카사가 잠깐 고민했지만 레오는 그 나름의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한참을 흠흠 거리던 레오가 말했다.
“뭐, 이유는 아무래도 좋아. 너는 재밌는 녀석이니까 싫어하지 않아. 오히려 좋아해! 지금 제안은 재미없지만... 스오가 내기에 이기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그게 정말입니까? 헌데 내기라면...”
“그래, 간단한 거야.”
츠키나가 레오는 그에게 내기를 말했고 츠카사는 과연 간단하면서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오 츠카사는 내기에 지고 말았다.
수업 종이 끝나자마자 쏠리는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츠카사는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고 곧바로 어색한 주황색 가발을 벗었다. 그의 리더는 어디에 있을까. 순식간에 결판이 난 것도 왠지 억울하고 다시 리벤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기는 간단했다. 고음 올라가기. 도에서 시작하여 차례로 한 음씩 올리기로, 상대보다 높은 음을 끝까지 내는 사람이 승리다. 자신은 미숙하지만 그래도 도전해 볼만하다고 츠카사는 생각했다. 돌아온 건 패배의 쓴 맛이었지만.
서늘한 숲의 잎사귀를 스치듯 끝도 없이 올라가던 음들이 귓가에 떠돈다. 리더, 괜히 하이텐션이 아니었네요. 거기까지 올라가다니. 츠카사도 마지막엔 보컬 수업에서 배웠던 발성법도 포기하고 목을 쥐어짜기까지 했지만 무리였다.
‘아쉽게 됐네~’
와하하핫 하며 크게 웃던 레오는 ‘맞아맞아, 벌칙을 줘야하지?’라며 패배의 대가를 내렸다. 그 결정엔 지나가던 키류 쿠로의 ‘수업에는 제대로 들어와라, 츠키나가.’가 큰 영향을 준 게 틀림없었다.
츠카사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최근 통화를 꾸욱 눌렀다. 통화음이 한참을 울리고 자동응답기로 넘어가기 직전 상대는 전화를 받았다.
“Leader 지금은 어디신가요?!”
[여보세요, 할 시간 정도는 주라고 스오~]
“그래서 어디시죠? 그 한 번으로 끝내기엔 너무...”
[아쉽지만 오늘 영업은 마감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추워서 학교를 탈출했거든!]
곧바로 귓전을 울리는 웃음소리에 츠카사는 숨을 집어삼켰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가신 겁니까!”
[스오가 남은 수업을 들어주기로 했잖아?]
“네? 벌칙이 오후 수업 전체였나요? 제 수업은 생각하지 않으신 거죠??”
[와하하핫, 패자의 말은 듣지 않아!]
활발한 목소리가 속을 부글거리게 했지만 애써 참으며 츠카사는 침착하게 말했다.
“오늘 영업이 끝났다는 건 내일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뭐어, 그럴라나? 내일도 도전해 보게?]
“네, 제게 chance를 주세요.”
[흐음, 상관없지만. 그럼 내일 봐!]
즐거운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겼다. 츠카사는 휴대폰을 꼭 쥐고 각오를 다졌다. 기필코 리더를 무대에 세워 보이겠다. 나이츠에 입단하여 리더를 기다려왔던 나날 만큼 새로운 목표가 츠카사에게 흘러넘쳤다.
다음날, 시노 하지메의 제보로 음악실 구석에서 정신없이 곡을 써 내려가는 레오를 붙잡고 내기를 청했고 레오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전날과 반대인 저음 내려가기에서 츠카사는 또 패하고 말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매일 승부 내용은 달랐다. 길거리에서 게릴라 퍼포먼스―앞에 깡통을 두고 누가 더 돈을 많이 받나로 승부를 정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손가락 씨름, 복도에서 달리기 경주, 자는 리츠 선배 등 위로 귤 탑 쌓기, 케이크 빨리 먹기 등등. 어떨 때는 레오가 압도적이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승패가 갈린 적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츠카사가 모두 졌다.
“카사 군, 그건 또 뭐하는 꼴?”
수업이 끝나고 나이츠의 활동날, 이즈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고 츠카사는 치욕적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의 양 손이 감추고 있는 곳엔 짧은 머리를 억지로 양 갈래로 묶은, 유치원에 다닐 나이의 아이가 할 법한 헤어스타일이 있었다. 어디서 가져온 지 모를 딸기 모양의 방울 끈까지 아주 앙증맞았다.
“Leader가 내린 벌칙입니다. 오늘 하루 동안... 감시 역은 리츠 선배라고....”
“응~.. 잘 지켜보고 있으니까~”
쇼파에 길게 누운 리츠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감시 역이 없어도 전 약속은 제대로 지킵니다. Leader는 저를 못 믿는 걸까요.”, “그게 부끄러워하는 포인트였어?” 같은 대화가 오가는 걸 지켜보던 이즈미가 기가 차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완전 한심해. 요즘 카사 군이랑 임금님 대체 뭐하는 거야?”
“...아직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Knights를 위한 겁니다. 성공하면 그 때 말씀 드릴게요.”
“흐음? 아무래도 좋지만. 일단 말해두는데 카사 군, 임금님 이길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이즈미의 엄한 말에 츠카사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귀찮은 기색이 여실하지만 그래도 이즈미는 설명했다.
“좀 맛이 가 있긴 해도 임금님 신체 능력 같은 거 발군이기도 하고. 자타공인 천재잖아? 자기 입으로 천재천재 하는 거 좀 짜증나지만 그게 사실이니까. 거기다 자기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해. 카사 군이 또 뭘 꾸미는진 모르지만 임금님이 호락호락 넘어가 줄 리가 없다고. 지금처럼 놀림 받기만 더하지.”
“그건...”
이미 알고 있지만. 츠카사는 침울하게 시선을 밑으로 떨궜다.
모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 계속 붙어보니 더 알았다. 그는 정말로 나이츠를 이끄는 왕이었고, 자신은 이제 막 들어온 신입기사라는 걸. 그 실력의 차가 뻔히 보여도 츠카사는 계속 도전했다. 그런 사람과 같이 무대에 선다는 건 얼마나 명예로운 일인가. 그래서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츠키나가 레오는 단지 츠카사를 가지고 놀고 있을 뿐이라 해도.
츠카사가 아무 말이 없자 아라시가 난입해 그를 끌어안으며 이즈미에게 비난의 말을 던졌다. 이즈미가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리츠가 크게 하품을 한다. 그 속에서 츠카사는 익숙한 평화와 동시에 허전함을 느꼈다. 이 속에 그들의 왕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곳을 거부하는 그에게 야속함까지 들 정도다. 퍼즐 조각은 모두 모였을 텐데 나이츠는 완성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나의 승리~!”
오후 햇살이 붉은 기운을 진득히 늘리고 있을 때 그와 비슷한 머리색을 가진 왕이 양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츠카사는 헐떡대며 간신히 근처로 다가갔다. 라이브가 아니어도 이런 날씨에 땀을 흘릴 수 있다니. 손바닥으로 땀을 대충 닦아내고 츠카사는 허리를 폈다. 레오는 지치지도 않았는지 여전히 방방 뛰고 있었다.
“그럼 Leader 이번의 벌칙을...”
“아, 그렇지.”
고심하는 척을 하던 레오가 츠카사를 향해 빙글 돌았다. 지휘자인양 손을 들어 올리며 힘차게 말했다.
“자, 이번 벌칙의 키워드는 ‘대단원’이다. 일주일 넘게 하기도 했고 세나랑 나루한테도 한 소리 들었고.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됐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 놀이는 여기까지야. 따라서 벌칙도 없고. 너는 더 이상 내 내기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거지. 내일의 내기는 없고 앞으로도 이어지지 않을 거야. 도돌이표를 넘어서 피네에 도착한 게 되려나?”
츠카사는 멍하니 레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리더는 평소와 같은 텐션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어온 바람에 그의 머리칼이 우쭐거렸다. 츠카사는 그 바람이 맵다고 생각했다. 눈이 시큰하게 아려왔다.
결국 해낸 것은 없었다. 그가 말한 대로 ‘놀이’는 끝났다. 츠카사에게 놀이는 아니었지만 결국 레오에겐 그 정도의 일 밖에 안 되었다는 얘기였다. 츠카사는 입을 벌렸다. 레오에게, 그의 리더에게 더 할 수 있다고. 자신은 놀이가 아니었다고, 진심으로 왕의 귀환을 바란다며 그렇게 말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물 밖으로 나와 버린 물고기처럼 소리 없는 숨만 터져 나왔다. 진한 노을과 겹쳐져 그의 왕이 흐릿해진다. 츠카사는 눈을 깜박였다. 시야가 일순 선명해지지만 다시 흐려졌다. 찰나의 순간에 보인 레오는 평소와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츠카사를 처음 보는 사람인양 놀란 얼굴로 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츠카사는 고개를 숙였다. 시야를 가리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츠카사는 소매로 눈을 문질렀고 축축하게 묻어나온 눈물과 함께 더 넘쳐나는 눈물을 보았다.
“스, 스오~?”
당황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어떤 일을 해도 놀라지 않던 리더였는데. 지금 상황이 굉장히 진귀한 걸 알지만 가슴을 꽉 채우는 답답함 때문에 츠카사는 눈물만 뚝뚝 떨궈야 했다. 목구멍까지 비집어 오르지 못한 소리가 눈물로 대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째서 우는 거지?! 내가 울린 거야?? 스오-”
레오가 손을 뻗어 품이 넉넉한 소매로 얼기설기 볼에 가져다 대었다. 조심스럽게 눈가를 누르는 천의 감촉에 츠카사는 숨을 집어먹었다. 그 숨은 제대로 된 말이 되어 터져 나왔다.
“-저는,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고개를 들자 아까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와 있는 레오가 보였다. 츠카사는 자꾸 터져 나올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Leader에게 한참 못 미치는 풋내기라는 건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과 함께 Stage에 서는 걸 진심으로 원했고 그래서 도전한 겁니다. Leader에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한 건 알고 있지만. 제 도전들을 놀이로 폄하하진 말아 주세요...”
말하면 시원해 질줄 알았지만 더 감정이 북받쳐 올라 츠카사는 다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을 해봤자 그가 말한 패자의 우는 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 얼른 이 꼴사나운 모습을 그만 보여줘야 할 텐데. 이를 악물며 다시 소매로 눈을 문지를 때 어깨에, 등에 무언가 닿아왔다. 그대로 따뜻한 무언가에 감싸였을 때 츠카사는 눈을 깜박였다. 교복 마이의 푸른 천이 시야를 메우고 보이지 않는 손이 아이를 어르듯이 등을 도닥였다.
“아-, 미안.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맞닿은 어깨를 타고 레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츠카사는 그 품에 안긴 채 멍하니 그 목소리를 들었다.
“스오와 했던 것들을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어. 스오~ 꽤 강했으니까. 나, 엄청 열심히 했다고? 내가 말한 놀이란 건, 장난 같은 게 아니고. 그 뭐냐... 스오랑 이렇게 놀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한 거였다. 스오와 함께 놀아서 정말 즐거웠거든. 사실 우리 이렇게 둘이서 논 거 처음이잖아?”
츠카사는 소리 없이 긍정했다. 아까처럼 펑펑 눈물이 나오진 않아 코를 훌쩍이며 레오의 말을 기다렸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스오도 나를 잘 모르고, 나도 스오를 잘 몰라. 그래서 줄곧 이렇게 같이 뭔가를 하고, 알아가고 싶었어. 저지먼트의 스오~ 꽤 멋졌으니까 평소의 스오가 궁금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스오의 부탁을 핑계 삼은 건 미안해. 스오가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실망하거나 포기할 거라는 계산도 있었지만 아니었나 보네. 역시 반성해야겠지. 미안 스오~”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눈물은 이제 멎어 있었다. 머뭇거리던 츠카사는 레오의 옷깃을 쥐었고, 고개를 어깨에 기댔다. 그를 도닥이던 팔이 등을 감싸 꼬옥 안아오는 게 느껴졌다. 울음을 그친 아이를 칭찬하며 안아주는 것 같았다.
“나이츠의 리더로 무대에 오르는 건, 으음, 조금 더 생각하게 해줘.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
“알겠습니다. 재고해 주신다니 기뻐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어라라~ 정말 그걸로 충분해?”
“...물론 Leader의 노래 소리를 듣고 싶은 것도 진심이긴 합니다만.”
한참을 그 품에서 위로를 받다가 츠카사는 몸을 떼었다. 눈가가 아린 것이 엄청 얼굴이 엉망진창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레오도 츠카사를 보고는 “예쁜 얼굴이 엉망이네~” 라고 농을 던질 정도였다.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그를 똑바로 마주봤다. 가라앉아 가는 노을빛이 그에게 옮은 것 같이 붉다.
“저도 Leader와 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분한 것도 있었지만, 역시 즐거움이 더 컸어요. 괜찮다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응, 응. 나도 스오와 함께 하면 즐거우니까! 즐거운 녀석도 아주 좋아해!”
레오의 얼굴엔 언제나의 웃음이 한가득 걸려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츠카사도 미소 지었다. 어린 기사가 다시금 그의 왕에 대한 신뢰를 되새겼을 때, 그의 마음에 다른 파편도 스며들었다. 그것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채 기사와 왕의 오후의 시간은 조용히 잦아들었다.
레오가 차로 바래다준다는 걸 거절한 츠카사는 머리도 정리할 겸 조금 걷기로 했다. 헤어질 때까지 츠카사를 신경 쓰던 레오는 츠카사의 등을 팡팡 치고는 돌아갔다. 언제나 스스로의 흥밋거리에만 달려가던 리더가 츠카사의 눈치를 살피는 건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너무 어리광 부리고 있던 건 아닌 지 고민도 되었다.
간만에 펑펑 울었으니 금방 잠들 거라는 예상은 깨졌다. 집에 도착한 후 시계바늘이 한참을 돌아가도 츠카사는 여러 상념에 잡혀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츠카사는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꽤나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전화를 하기엔 좀 실례인 시간이 아닌 가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통화음이 끊겼다.
[스오~?]
“네,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혹시 잠을 깨운 건 아니지요?”
[잠? 아아, 벌써 이런 시간이네! 하지만 자기엔 아까운걸. 이 시간은 망상이라는 단골손님이 자주 찾는 시간대니까-]
“Inspiration 말이군요. 너무 늦게 주무셔서 지각하지 마시고요. 내일 Knights의 활동일이란 것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 지각은 모르겠지만 나이츠 활동 시간까지 늦잠 자진 않을 거야.]
“그건 좀 걱정이네요... 그보다, Leader.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응? 뭔데, 뭔데?]
“오늘도 그렇지만 그간 제가 계속 무례하게 군 게 아닐까 싶어서요.
[전혀? 스오가 무례하다면 세나는 사형감인걸! 왕보다 먼저 단두대로 가는 기사가 될 거야~ 물론 그 점이 세나의 매력이지만.]
“Knights에 세나 선배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아니, 실례. Leader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면 다행입니다.”
[뭐야, 그것 때문에 잠을 못자고 있는 거야? 와하하핫, 재밌는 녀석!]
전화기를 통해 선명하게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츠카사는 왠지 심장이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았다. 기분 좋은 울림이었다. 언제까지라도 계속 듣고 싶은 소리. 한창 작곡 중의 들떠있는 목소리도, 지금 같은 늦은 밤의 평소보다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도, 듀얼 때 무대를 제압할 때 목소리도. 그렇게 하나하나 반추하다가 깨달았다. 츠카사는 레오의 목소리가 정말로 좋았다.
[그래도 슬슬 자지 않으면 곤란한걸. 음 좋아, 대서비스다! 크리스마스도 곧이니 미리 선물받는 걸로 하자고.]
“Leader..?”
츠카사의 말에 응답하듯 전화기 속에서 상냥한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흘러나왔다.
[나이츠의 내일을 짊어질 신입 기사님의 숙면을 기원하면서. 오늘의 마지막 곡은 스오 츠카사님이 신청하신 곡입니다~ Close to you.]
That is why all the girls in town
Follow you all around.
Just like me, they long to be close to you.
Just like me (Just like me)
They long to be close to you.
close to you, close to you.
-
지금까지 5성 공약이 소마 먹은 건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구요. (머쓱)
스토리 가챠 공약인데 치매가 오려나...
여튼 제 이벤트에 참여해 주신 한심님께 드린 츠카레오입니다.
츠카레오 더 파주세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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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례한 놈! 노크도 없이 들어오다니 아무리 원숭이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최소한의 매너도 몰라?”
“말로 했는데.”
“‘손님 받아라!’가 무슨 노크라는 거야?!”
“이 시끄러운 분홍 병아리는 학생회 새 멤버? 그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레오는 씩씩 대는 토리 너머를 손을 뻗어 가리켰다.
“너네 회장 쓰러졌어.”
“-회장님?!”
레오는 다시금 들어왔을 때 학생회 실의 풍경을 기억했다. 달큰한 방에서 가장 크고 안쪽에 위치한 곳에서 에이치는 평소의 등을 편 올곧은 자세 대신 무너진 석탑 마냥 책상 위에 쓰러져 있었다. 토리가 화들짝 놀라 에이치에게 달려가고 레오도 어슬렁어슬렁 그 뒤를 따라갔다.
“불러서 왔더니 이건 무슨 퍼포먼스?”
“퍼포먼스 일리가 있냐! 빨리 회장님을 부축하라구, 노예!”
레오에게 왈칵 화를 내면서도 토리는 안절부절 못하며 에이치를 흔들고 “회장님 정신 차리세요”가 섞인 울음소리를 왕왕 내고 있었다. 하필 있는 게 이런 꼬맹이 도련님뿐이라니 인복도 없는 놈. 레오는 이죽이며 쓰러진 에이치의 교복 주머니를 뒤졌다. 날렵하게 빠진 핸드폰을 꺼내고 지문 인식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잠금은 곧바로 풀렸다. 눈을 둥그렇게 뜨는 토리 옆에서 레오는 번호를 찾고 전화를 걸었다.
“네에- 츠키나가 레오입니다. 댁네 도련님이 쓰러져서요. 네, 네. 그럼 지금 교문으로.”
간단하게 대꾸한 레오는 전화를 끊고 다시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 넣었다. 책상에 늘어져 있는 에이치를 어떻게든 부축하려 한참을 씨근대던 레오는 그 때까지 멍하니 보고 있는 토리에게 말했다.
“회장님 저세상 가는 거 보기 싫으면 좀 도와주지 그래?”
아 진짜 싫다. 레오는 그렇게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등 위에서 중력의 실재를 온 몸으로 증명하는 무게에 집중해야 했다. 자신보다 10센티 정도 큰 남자를 업고 가는 것이 신기했는지, 아니면 그 텐쇼인 에이치를 업고 가는 모습에 경악했는지 유메노사키 학원생의 시선들이 다트처럼 꽂히고 있다. 황제랑 얽혀서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랬다. 어찌됐든 레오는 빠르지 않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리는 끌리지 않아. 공중에 안정적인 높이로 떠 있는 에이치의 다리를 흘끔 쳐다보며 레오는 자신의 키에 다시 자부심을 가졌다. 학생회 분홍 꼬마가 유즈루인가 유자인가 뭐를 불러온다고 나갔지만 이런 거북이걸음에도 올 소식은 없어 보였다. 아이돌이어서 그런지, 원래가 부실해서 그런지 멀대 같이 큰 키에 비해 무게는 제법 가벼워서 죽을 것처럼 힘들진 않았다.
다만 걸음 한 걸음마다 영감이 치솟아 오를 것처럼 꿈틀댔다. 세기의 음악이 태어날 것 같아. 그 때는 황제고 뭐고! 레오는 두근거리며 우주의 교신을 기다렸지만 움찔거리는 영감은 발자국과 귓가에 흔들리는 옅은 금발에 섞여 사라지고 만다. 역시 텐쇼인 에이치는 츠키나가 레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난의 계단을 내려가고 1층의 복도를 비틀비틀 걷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두들겼다. 돌아보지도 않아도 알았다. 이 학원에서 레오를 리더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다.
“이게 무슨 일... 이 사람은 학생회장님인가요?”
“응응. 벌거벗은 임금님 위에 유랑하는 황제 폐하라니, 이거 굉장하지 않아?”
“확실히 situation은 굉장합니다만...”
옆으로 다가온 츠카사가 둘의 모습을 살피며 따라 걸었다.
“제가 업을까요? Leader 굉장히 힘들어 보여요.”
“아서라, 아서. 이거 생각보다 무겁다고! 스오가 업으면 곧바로 넘어질걸? 어때, 하늘을 받치는 아틀라스 같아 보여?”
“그것보단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Jesus 같지만요...”
“헤에~ 그것도 멋지네! 망상할 수 있을 것 같아!”
신명나게 말을 하다가 스테미너가 배로 떨어진 레오는 반강제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Leader, 역시 제가... 옆에서 종종 걸음으로 쫓아오는 걸 레오는 고개만 저어 거절했다. 어차피 정문까지만 가면 텐쇼인 가문의 사람들이 도착할 것이고 그들에 넘기면 끝이다.
어정쩡하게 따라오고 있던 츠카사가 말했다.
“Leader는 의외로 회장님과 close한 사이군요 옛 이야기만 들으면 말도 섞지 않을 사이 같았는데 Leader가 이렇게 남을 위해 움직이는 것도 처음 봐요.”
어쩐지 감탄한 것 같은 그 모습을 보던 레오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웅얼거리는 것처럼 작은 소리로 레오는 말했다.
“그거야 뭐, 찐한 육체관계가 오간 사이니까.”
“네?”
“아-니 그야 뭐 그냥 옛정 같은 거? 지겹게 얼굴을 마주봤어야 했으니까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것 뿐.”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츠카사 옆에서 레오는 에이치가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기분 나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레오의 착각일 뿐인지 옆에서 늘어진 팔은 무기질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오후의 느지막한 햇살이 특히 쏟아지는 중앙 입구가 보이자 레오는 발을 멈췄다.
“스오는 이제 돌아가.”
“예? 교문까지 가시는 거지요?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텐쇼인 가문 쪽이랑 괜히 얼굴 마주할 필요 없잖아? 나는 얼른 이 짐덩이 던져두고 갈게. 곧 나이츠 활동 시작할 시간이기도 하고.”
“그 Knights에 Leader가 빠져있으면 곤란하잖아요. 곡은 오늘 받기는 했지만...”
“그래그래, 내 천재적인 신곡에 어울리는 퍼포먼스 연습들 하고 있으라고! 간다!”
츠카사의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레오는 아까보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연습에 꼭 오셔야 합니다!” 라는 말에 건성으로 한 손을 흔들고는 한쪽으로 무너지는 몸을 제대로 잡았다. 얼른 이 짐덩이를 던져버리면 인스피레이션이 다시 솟구칠 거야!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씩씩하게 걸어갈 때 문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몇 들어서는 게 보였다. 그들은 에이치를 업은 레오를 보자마자 똑바로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츠키나가 님.”
“....”
다른 남자가 에이치를 등에서 조심스레 받아들었고, 레오는 그새 결리는 어깨를 돌리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대로 패스했으니까, 나는 이만-”
“잠시.”
레오는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만 더 도련님과 함께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흐음, 그 황제 폐하가 눈을 떴을 때 내가 있는 걸 알면 별로 좋아하진 않을 것 같은데?”
“도련님의 부탁이십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가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다른 사람에게 안겨 있는 에이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고 있었다. 자신의 유닛에 있는 누군가의 말투가 레오 속에서 저도 모르게 샘솟는다. 아, 짜증나. 역시 텐쇼인 에이치와 엮이면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빠르게 이동하는 것에 비해 별다른 진동이 느껴지지 않는 리무진은 부잣집 도련님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옆으로 길게 늘린 모양의 차체만큼 옆으로 늘어선 좌석에 에이치는 누워있었고 레오는 반대편에 앉아 푹신한 시트에 몸을 깊게 묻고 있었다. 수첩을 꺼내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악상을 적긴 하지만 우주의 목소리가 닿아있진 않았다. 그저 곁가지 같은 음정과 음표를 끼적이며 레오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수많은 모차르트가 내려다보는 불쾌한 감각 속에서 레오는 문득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를 눈치 챘다. 눈이 마주치자 살풋 미소가 지어진다. 레오는 심술이 비죽 나오는 걸 느꼈고 그대로 입으로 뱉어냈다.
“황제 폐하가 자주 쓰러지셔서야 그 신민들은 어떡하겠어? 학원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자꾸 쓰러지나?”
“그 신민 중 하나인 츠키나가 군이 하는 걱정이니 고맙게 받을게.”
“걱정 아닌데. 그보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어?”
“무슨 말이야?”
“시치미 떼지 마. 학원에서 언제부터 깨어있었냐고.”
“임금님이 그의 충직한 기사와 이야기 할 때부터. 벌거벗은 임금님의 목소리는 무척 듣기 좋아서 덕분에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었지.”
아, 역시. 레오는 아까부터 의미 없이 볼펜의 자국이 이어지던 수첩을 덮고는 에이치를 노려보았다.
“너 무겁거든? 눈 떴으면 발딱 일어나 주지 않을래?”
“아쉽게도 의식이랑 몸을 움직이는 건 별개의 일이야. 지금도 이렇게 꼼짝을 못하잖아?”
“...그래 보이긴 하네. 왜 쓰러진 거야? 혹시 어제 라이브라던가? 여전히 약하다 못해 가녀린 황제 폐하신걸~?”
“그렇지. 열성은 힘들어. 그래서 네가 정말 부러워. 안 그래? 우성인 츠키나가 군.”
“하.”
비웃음과 닮은 소리가 레오 입에서 뛰쳐나왔다. 그 대상은 에이치가 아닌 레오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에이치도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면서도 황제의 여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당장 두 손으로 목을 졸라도 꼼짝 못할 주제에.
그 생각을 실행하는 대신 레오는 빈정거렸다.
“그래그래, 많이 부러워하라고. 열성 인자는 평생 모를 감각일 테니까.”
에이치는 아까와 다름없는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도발은 공기 속에 녹아 흩어진다. 레오는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았고 덕분에 차 안은 임시 휴전의 평화가 머물렀다.
레오는 흘끗 에이치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이번엔 눈이 마주치지 않아 레오는 빈말로도 좋다고도 할 수 없는 호흡소리가 나가고 사라지는 걸 지켜본다. 열성이란 판결 아래 저 몸 안에선 허술하게 구성된 세포가 지금도 간신히 그 연결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무리해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이라니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얼굴이라도 잘나서 다행이다. 저게 없었으면 아이돌도 못해먹겠고, 레오와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생각해 보니 그편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츠키나가 군이 이렇게 옆에 있어줘서 다행이야.”
언제 눈을 떴는지 에이치가 말했다. 레오는 수첩을 팔랑거리며 대답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외로움을 탔다고? 손가락만 까딱해도 달려올 사람이 넘치는 도련님의 고독이란 거? 이건 꽤 괜찮은 망상일지도!”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너는 내 옆에 있지.”
“정말 자기 좋은 것만 듣는 황제네. 네가 말할 때마다 멜로디가 죽어가니까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 사랑스러운 숙적 츠키나가 군. 이것만 말해줘. 너는 너의 세계가 죽어가면서도 왜 나와 함께 있는 거지?”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속모를 푸른 눈동자를 뚫어지게 보던 레오는 활짝 웃었다.
“어떤 오페라를 기대한 거야? 안타깝게도 여기엔 희극도 비극도 낭만도 없어! 너와 나 사이엔 한 곡조차 완성하지 못했고, 쓰다 만 희곡은 일말의 가치도 없지. 굳이 남은 걸 찾자면 지저분한 조각이 있네.”
팔을 과장되게 뻗어 에이치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단순한 동정과 몸정이라는 이름의 조각. 어때, 삼류 드라마에서도 안 쓸 소재지?”
흰 벽에 기대어 레오는 다섯 손가락을 쭉 피고 다른 손과 그것을 마주 댔다. 데칼코마니처럼 이어진 손을 움지럭움지럭 거리며 이것저것 모양을 만들어 낸다. 손끝끼리 이어져 인도 신전 지붕 모양을 만들었다가 바싹 붙은 다섯 개의 기둥이 되었다가. 한참을 그걸 노려보고 있던 레오는 손을 뗐다. 무료함 속에서도 영감은 내려온다. 레오는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눈을 감자 시각이 잠드는 대신 온갖 음악이 앞을 다투어 몰려오기 시작했다. 커다랗게 뚜벅이는 구두 소리가 만들어 내는 독단적인 선율에 끼익 거리는 쇠의 마찰음이 난입하고 성대를 비집어 올라온 웅성임들이 제각각의 하모니를 이룬다. 병원은 진정되지 않는 기묘한 흥분감에 잠겨 있었다. 레오는 기시감을 느꼈다. 신경을 타고 뇌가 자신의 기억을 헤집기 시작했다. 청각도 잠이 든다.
그건 첫 저지먼트 때였다.
승자와 패배자가 나뉘는 순간 무대는 고양감으로 폭발할 듯 일렁였다. 나이츠였던 그들은 혁명을 완성하지 못하고 숙청이란 이름 아래 기사의 검을 빼앗겼고, 레오의 동료는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세나, 릿츠. 이 저지먼트를 돕거나, 혹은 지켜본 자들이 레오에게 몇 마디를 던졌지만 레오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나이츠! 그들은 더욱 단단하게 굳어지고 칼끝은 날카로워진다. 명예로운 기사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간다. 레오는 고열 같은 흥분 속에서 끝없이 내려오던 인스피레이션을 기억한다. 무대에 막이 내리고 모두가 돌아간 유메노사키 학원, 그 속의 나이츠의 성에서 레오는 우주가 시끄럽게 속삭이는 소리를 적어내리기 바빴다. 그 위대한 작업은 손에서 볼펜이 미끄러질 때까지 계속됐었다. 레오는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펜을 주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부턴가 덜덜 떨리고 있는 손가락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펜을 향해 숙였던 몸은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무대에서 한껏 들이마셨던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몸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뜨거움에 억지로 숨을 내쉬면서도 레오는 지금의 음악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아아, 음악이 사라져간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멍청한 몸 때문에 세기의 음악이 사라져 간다고! 차가운 바닥이지만 그 온도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죽어가는 벌레처럼 버르작거리며 바닥을 긁었다. 손으로 적지 못하면 입으로라도 뱉어주마. 억지로 입을 벌려 성대를 울려 끄집어낸 목소리가 엉망진창으로 음표를 불러댔다.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는 이어지다가 이어지다가 결국 마지막을 고하고 추락했다. 감당 못할 열기 속에서 레오는 귓가에서 자신의 숨소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밭은 숨을 들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저지먼트는 승리하고 세기의 음악은 레오를 감싸고 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 때였다.
“다친 새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줄 알고 손을 내밀어 주려고 왔는데.”
열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승리한 왕의 옥좌가 있는 곳이라니, 참 흥미로운 일이지.”
몸속의 열이 한층 더 치솟는 걸 느꼈다. 레오는 억지로 몸에 힘을 줬다. 두 팔로 바닥을 디디자 상체만 간신히 일으킬 수 있었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기관이 심장인 것처럼 동맥이 귓가에서 두근박질 쳤다. 어질어질한 시야를 잡으려고 레오는 눈을 찡그렸다.
“왕이 쓰러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전장에서, 가장 앞장서서 싸운 너의 모습은 아주 인상 깊었어. 뒤에 따르는 기사들의 신뢰도, 자신의 동료였던 자들을 숙청하는 용서 없는 모습도. 그런 혈기왕성한 왕이 오메가라니. 정말 재밌어, 츠키나가 군.”
“누구야, 너.”
레오는 말하면서도 그 의문은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서늘한 손이 두 뺨을 감쌌다. 볼에 와닿는 감각에 레오는 당장 그 두 팔을 붙잡고 싶었다.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시야가 백금발을 얼핏 잡았다가 푸른색을 잡았다가 휘청였다. 그 와중에 상냥한 목소리가 깃털처럼 내려왔다.
“텐쇼인 에이치. 너는 츠키나가 레오 맞지?”
대답할 여력은 없었다. 레오는 본능에 따라 눈앞의 사람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다. 이제 한계였다.
레오는 눈을 떴다. 바로 앞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 문을 열고 나왔다. 텐쇼인 에이치의 검진이 끝났다. 레오는 문득 자신의 꼴이 한심해졌다. 애 보는 엄마도 아니고 병원까지 쫄쫄 와서 앉아있는 꼬락서니라니. 닫힌 병실 문을 보면서 레오는 신경질 적으로 벽에 더 몸을 기댔다. 벽은 그의 체온으로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부웅 울렸다. 레오는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받았고 곧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후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Leader! 아까 분명히 연습에 꼭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스오?”
「예에! Knights의 스오 츠카사입니다! Leader 지금 어디신가요?!」
“병원~”
「네..? Hospital 말입니까? 어디 아프신 건...」
“별 거 아냐~ 덩치 큰 애를 봐야 해서. 나의 기사들은 왕의 감시가 없어도 열심히 할 거라고 믿고 있어!”
「제일 큰 문제는 Leader 같습니다만...」
나이츠의 막내의 한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그래도 몸조심하세요. 세나 선배님도 약 챙겼냐고 물어보셨고.」
약? 잠깐 갸웃하던 레오는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걱정 마, 걱정 마. 제대로 챙겼으니까!”
잔소리를 몇 마디 더 보태지만 상대의 기세는 아까보다 훨씬 잦아들어 있었다. 독하지 못하다니까. 결국 마지막은 걱정으로 끝나는 전화를 끊으며 레오는 히죽 웃었다.
세나가 약 이야기를 꺼낸 건 슬슬 주기가 돌아올 때가 됐단 거였다. 얼핏 든 기시감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약이 어디 있더라. 레오는 예의상 약의 마지막 행방을 떠올렸다. 나이츠 성에다 던져뒀는데. 아니다, 그 후에 세나가 약을 발견하고 화를 내면서 억지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거추장스러웠는데. 집에 있을까? 모른다. 몇 년 전에 받은 약은 절반도 먹지 않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약―억제제를 먹은 건 딱 한 번뿐이었다. 끔찍했다. 육체와 정신이 맞지 않는 듯 붕 뜨는 느낌하며, 감각이 둔해져 걷는데도 둥실둥실 떠다니는 기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른함이 전신을 지배했다. 세상에 가득한 망상을 다 밀어내는 그 상태를 레오는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세계는 레오에게 더 많은 음악을 들려줬다. 예민해진 귀는 그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받아들였고 바흐에게로 한 걸음을 더 재촉한다. 주위의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다가와 레오는 더 많은 자극을 원하며 그들에게 몸을 던졌다. 망상이 가득한 세계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건 망상이 아니야. 네 몸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들이지.’
그런 때에 언제나 같이 있던 에이치가 초를 치는 소리를 했지만 레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심중을 헤아린 적은 거의 없었다. 물가에 드리워진 버들처럼 한들거리면서 시종일관 짓고 있는 미소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레오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레오도 그랬지만 에이치도 그랬다. 텐쇼인 에이치가 주축이 된 학생회가 만들어 낸 암흑기는 나이츠를 빗겨가지 않았다. 몸을 섞는 달큰한 관계의 뒷면은 한 쪽이 망가질 때까지 이어진 끝없는 싸움이었다. 서로가 자기 좋을 대로 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태어날 군상극은 없었다.
다시 문이 열렸다.
“돌아간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기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레오가 자리를 뜨려고 했다면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텐쇼인 가의 사람들이 제지했을 것이다. 레오는 삐뚜름하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에이치의 곁에 기사처럼 링거대가 서있었다.
“병약하신 황제 폐하가 친히 마중 나와 주신 건가?”
“초대한 손님을 맞이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그으래? 그래서 왜 불렀는데.”
“흐음, 처음엔 츠키나가 군이 돌아와 준 기념으로 저녁을 제안할까 했는데 말이야.”
“여기에서야 대접할 건 환자식뿐일 것 같은데. 미슐랭 가이드가 극찬할 만찬이겠네.”
“임금님의 입맛에 맞을 식사는 좀 더 고민하게 해주겠어? 자, 그럼.”
레오 앞으로 흰 손이 정중하게 내밀어졌다. 살짝 숙인 허리와 조금 내려간 시선엔 호의적이라고 판단해도 아무 문제없을 미소가 걸려 있었다.
“들어가실까요?”
명백한 에스코트의 자세에 울컥했지만 텐쇼인 에이치가 한두 번 이러는 것도 아니었다. 에스코트는 자기가 받아야 하면서. 링거액을 곁눈질 하던 레오는 결국 손을 내밀어 에이치의 손을 잡았다. 서늘한 손에 레오의 열기가 전염된다. 아무런 관객도, 어떠한 감동도 없을 즉흥극이 시작되는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츠키나가 레오는 그 극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배우이자 관객인 그는 궁금해 한다. 이번에 그 극의 결말은 어떻게 날 것인가. 엉망진창인 무대에 두 명의 배우가 오름과 동시에 병실의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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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성 공약 리퀘로 클립님께 드린 에이레오입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나즈냥을 얻었습니다. 헉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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