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리퀘4 리츠마오
* 리츠마오
* 과거 날조
* 듀얼 네타가 있긴 한데 사소합니다..
뜨거운 여름 해가 마지막 열기를 쥐어짜는 오후, 이사라 마오는 문 앞에 서 있었다. 철제로 만들어진 문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금속이 흘끗 보였다. 조금만 쥐고 있어도 강한 쇠 냄새가 묻어날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지만 이 집 주인은 집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몇 년 전에도 이런 상태였다는 걸 떠올리며 마오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사실 문 상태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분산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누렇게 변색된 초인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벨소리가 길게 울렸다.
어릴 적, 지금같이 교복을 입기도 전 어린 나이에 마오는 이 집이 있는 골목에서 놀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줘 차도 잘 날아가는 고무공을 또래의 친구들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선명한 연두색의 공은 친구의 다리에 맞고 힘차게 날아올라 담을 넘어 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 넘어갔네. 귀찮아졌다며 마오가 친구들을 돌아볼 때 그들은 마오와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이 금세 겁먹은 아이들의 얼굴에 마오가 왜? 라고 물었고 아이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저기, 괴물이 나오는 집이래.’
‘하?’
저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들은 마오의 그런 심드렁한 반응을 신경도 안 썼다. 귀신이라던데. 아니야 좀비랬어. 옥신각신하는 얘기를 들으며 마오는 다시 집을 돌아보고 말했다.
‘그 옆이 우리 집인데.’
아이들은 동시에 말을 멈추었다. 마오는 손을 뻗어 한창 귀신의 집이라 떠들어대던 집과 담을 마주한 자신의 집을 가리켰다. 그리고 반복했다. 우리 집. 아이들의 눈이 더 커졌다.
결국 공 가져오기 담당은 마오가 맡게 되었다. 항상 지나다니는 익숙한 골목이지만 문 앞에 서는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마오는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담장이 무슨 색인지도 몰랐다. 오른쪽에도 집이 있고, 왼쪽에도 뒤에도 앞에도 집이 있는 그런 주택가에서, 인사도 제대로 나눈 적 없는 이웃집에 신경을 쓰기엔 마오 주위엔 재미난 게 넘쳤다.
당장이라도 뭐가 나올 것처럼 굴고 있는 친구들 때문에 지금까지 별 생각 없던 마오도 조금은 망설여졌다. 하지만 놀이공원에나 있을 호러 하우스가 집 옆에 있을 리 없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마오는 손을 높게 뻗어 제 키보다 위에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찢어지는 것 같은 음이 방문을 알렸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오는 두어 번을 누르다가 이 집에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에 부딪혔다. 이대로 공을 버리고 가기엔 그들의 공놀이는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망설이던 마오는 철문을 밀어 보았다. 쇠가 서로 비벼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끼기덕 열렸다. 마오는 뒤를 돌아보았다. 유독 음산하게 들리는 소리에 겁을 집어먹었는지 아이들은 더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 있었다. 응원하는 마음과 말리는 마음이 한데 뒤섞인 얼굴들을 보며 마오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은근히 생겼던 공포심도 왠지 사라져 마오는 성큼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바로 옆집인데도 딴 세상 같았다. 마오의 발목만큼 자라난 풀들이 마당에 한가득 자리 잡고 있으면서 간간히 들꽃들이 제멋대로 피어 있었다. 그 야생의 잔디들 사이에 문으로 이어진 흰 돌들은 을씨년스럽게 현관까지 이어졌다.
‘실례합니다-’
혹시 몰라 크게 말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왼편에 보이는 커다란 거실 창문은 그만큼 커다란 커튼으로 빈틈없이 닫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적막한 풀숲에 혼자 색을 빛내며 덩그라니 놓여 있는 공을 바로 발견한 마오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게 자란 풀이 운동화에 밟혀 파사삭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까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골목인데 벌레 하나 울지 않는 침묵이 가득했다. 마오는 공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거실의 거대한 커튼이 얼핏 흔들렸다. 쿵쾅거리는 심장과 달리 발은 얼어붙은 것처럼 그곳에 못 박혔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창문을 보던 마오는 주인이 있다 하더라도 사정을 밝히면 된다는 걸 겨우 생각해냈다. 순식간에 말라붙은 목으로 말을 꺼내려던 마오는 집이 여전히 조용하다는 걸 불현 듯 깨달았다. 커튼이 움직인 건 착각일 수도 있다. 눈을 깜빡이며 열심히 창문을 바라보았지만 움직이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조금 후에 마오는 조심스레 다리를 뗐다. 마오가 잔디를 헤치며 문가로 갈 때까지도 그를 놀래킬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통칭 괴물의 집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어 마오는 한숨과 함께 문 밖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마오는 그의 여동생이 수선을 피우며 그녀의 엄마에게 옆집 얘기를 꺼냈을 때 책에 여전히 눈을 고정한 채로 말할 수 있었다.
‘그거 헛소문이던데.’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샐쭉해진 목소리로 여동생이 물었다.
‘오빠가 어떻게 알아?’
‘들어가봤으니까.’
가볍게 대꾸한 마오가 쇼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봐봐.’
동생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간 마오가 창문 너머의 집을 가리켰다.
‘그냥 멀쩡한 집이야.’
‘흐응.’
그의 동생은 궁금했는지 열심히 집을 쳐다본다. 창문이 열리기라도 기대한 모양이지만 꼭 닫힌 창문엔 귀신의 집답지 않은 얇은 흰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빠 방이랑 딱 마주보네.’
2층의 누가 사는지 모를 그곳의 창문은 시종일관 닫혀있지도 않았다. 저녁의 느긋한 바람을 맞으며 흰 커튼이 가볍게 살랑대는 걸 본 적도 있었다. 지금은 굳게 닫힌 창문을 한참을 바라보던 여동생은 ‘에이’ 라며 창가에서 몸을 뗐다.
‘그래도 사람 있는 거 본 적 있어?’
‘...아니 딱히.’
‘괴물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보면 꼭 말해줘.’
아마 마오가 보게 될 광경은 볕 좋을 때 이불을 두들기는 그런 모습 같은 걸 테지만 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집은 그저 정원 관리를 안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고 아마 집주인은 또래의 아이가 없어서 그런 소문을 모를 거라고 어린 마오는 결론을 내렸다. 그날도 평화로운 동네의 풍경 속에 완벽히 녹아있는 옆집을 보며 마오는 만약 옆집에서 정원 청소를 시작하면 조금이라도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후 마오는 옆집을 도와주게 되었다. 그가 생각한 청소 같은 자질구레한 용무와는 전혀 다른 일로,
주말, 다 외출을 해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좋을 대로 늘어져 있던 마오는 창문에서 떨어지는 한낮의 빛에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났다. 커튼을 잡다가 저도 모르게 창문 밖 옆집으로 시선이 갔다. 웬일로 2층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마오는 눈을 크게 떴다. 바람에 나부끼는 흰색 천 너머로 작은 손이 보였다. 바닥에 힘없이 늘어진 손을 따라 둥그런 검은 머리도 마찬가지로 바닥에 미동 없이 한참을 있었다.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쓰러져 있다는 건 확실했다.
조용한 집에선 마오가 도움을 청할 사람들은 없었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안절부절못하던 마오는 결국 집 밖으로 나왔다. 담쟁이가 가득한 벽을 따라 달린 마오는 며칠 전에 섰던 문 앞에 섰다. 초인종 소리가 집 안을 울려도 답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있는 건 확실했다. 아이의 손에 떠밀린 문은 역시나 거슬린 소리를 냈지만 그를 들여보내 주었고 마오는 그대로 달려나갔다.
‘계세요? 옆집 사람인데요-!’
길게 뻗어간 목소리는 옆집의 그 무엇도 깨우지 못했다. 마오는 결국 망설이다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여름 해에 느긋하게 데워진 손잡이를 돌리니 문은 걸리는 것 없이 쉽게 열렸다. 문틈으로 바깥의 햇살이 수선스럽게 쏟아졌지만 신발장을 가로질러 복도까지만 뾰족하게 드리우곤 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밖의 뜨거운 공기와 대조적으로, 에어컨이라도 튼 것처럼 싸늘한 공기가 가득해 팔에 소름이 돋았다. 무겁게 덮인 커튼때문에 어둑한 낯선 집엔 이질적인 거대한 피아노가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그의 친구와 여동생이 말하던 괴물의 집이라는 말이 가슴에 턱턱 박혔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문만 잡고 있던 마오는 문득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작은 운동화를 발견했다. 마오가 신고 있는 것과 비슷한 크기의 모습은 아까 창문 너머로 본 손도 같이 떠올리게 했다. 자신 또래의 아이가 쓰러져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위급함이 마오를 움직였다. 마오는 실례한다고 외치고 문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고 곧장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서두른 발걸음이 계단을 눌렀다.
2층은 1층 보다 훨씬 밝았다. 복도 끝에 열려 있는 창문이 그나마 밖의 빛을 옅게나마 가져오고 있었다. 그 복도에 아이는 쓰러져 있었다. 마오는 한달음에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저기, 괜찮아? 어디 아파?’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에게 대답은 없었다. 한여름인데도 손에 닿은 상대의 피부는 놀랍도록 차가웠다. 덜컥 겁이 난 마오는 쓰러진 몸을 눕히려 애썼다. 엎드려 있던 아이의 얼굴이 복도의 빛에 드러난다. 새하얀 피부에 감겨있는 두 눈, 살짝 벌어져 있는 입까지. 어디의 도련님처럼 단정한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가까이 귀를 가져다대면 작게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감기 걸리면 몸이 뜨거워지는데, 차가워지면 어디가 아픈 거였지? 병원에 갔던 기억을 끄집어 낼 때 상대가 움찔하고 움직였다. 아주 천천히 눈을 뜬 아이가 마오를 멍하니 바라본다. 덜 뜬 눈꺼풀 사이로 진한 붉은색과 시선이 마주치자 마오의 심장이 이유 모를 불안감으로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걸 애써 무시하며 마오는 말했다.
‘난 옆집에 사는데 네가 쓰러진 게 보여서-.’
‘-파.’
아이의 입이 움직이는 걸 보고 마오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 그 소리를 들으려고 고개를 기울였다. 아이가 다시 말했다.
‘-배고파.’
그리고 벌어진 입이 그대로 가까워지는 걸 보았다.
결론적으로 그곳은 괴물이 살고 있는 집이 맞았다.
마오는 눈을 깜박거렸다. 어둠에 잠긴 천장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침대에서 멍하니 일어난 마오는 이것이 자신의 침대가 아니라는 것도 낯선 방에 있다는 것도 금방 눈치 챘다.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인공적인 불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바깥에서 누군가 움직이고 있었다. 달각거리는 소리. 부엌에서 누군가 식기를 만지고 있었다.
마오는 몸을 덮고 있는 푹신한 이불을 옆으로 치우다가 그 침대에 자신 말고 또 한사람을 발견했다. 마오 옆에서 곤히 잠든 얼굴을 발견한 마오는 불현 듯 자신의 목덜미를 눌렀다. 맨살의 감촉 대신 천이 덧대진 것 같은 까슬함이 느껴졌다. 목에 붙어있는 거즈를 어색하게 만지던 마오가 다시 옆을 바라보았다. 붉은 눈동자와 날카로운 송곳니. 아까 일은 꿈이 아니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평하게 자고 있는,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보던 마오는 침대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방과 달리 환한 빛을 내뿜는 거실로 나갔다.
거실엔 그보다 한참이 큰 어른이 있었다. 얼굴은 자고 있던 아이와 비슷했다. 남자는 그를 발견하고 붉은 눈을 곱게 휘며 미소 지었다. 마오에게 일어났냐며 말한 그는 자신을 간단히 소개했고, 마오가 옆집에 살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마오네 아버지보다 어려 보이면서 할아버지 말투를 쓰는 남자는 마오를 식탁 앞으로 안내했다. 꽤나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앞에 두고 사양 말고 먹으라는 소리를 들으니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잡아먹히기 직전의 포식 같은 게 생각났다. 그런 걱정은 배가 굉장히 고픈 어린 남자아이에겐 불필요한 것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들은 남자는 마오에게 여러 얘기를 하였다. 남자의 이름은 사쿠마 레이. 자고 있는 아이는 동생으로 사쿠마 리츠. 이 집엔 두 형제만 살고 있으며 부모님은 외국으로 출장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래, 우리들은 흡혈귀란다.’
목덜미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상처 부위를 문지르는 마오를 보며 레이는 쓰게 웃었다. 레이는 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피가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고, 리츠도 그럴 거라고 말했다. 오늘은 자신이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 리츠가 많이 허기진 상태였다며, 그는 사고라는 표현을 썼다. 그 사고에 대한 사과는 자고 있는 동생 대신 형이 하였다.
‘우리 리츠가 사교성이 적어서 친구가 없는데 이사라 군이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니? 리츠도 이사라 군이 마음에 든 것 같거든.’
도시락이 마음에 든 건 그 내용물이 맛있어서지, 도시락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아닐 거다. 마오를 보자마자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은 리츠가 그를 어느 쪽으로 생각할지는 뻔했다. 마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우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손수 만들었을 음식들을 입에 하나씩 넣고 우물거리면 레이의 웃음이 담긴 시선이 쫓아왔다. 붉은 눈과 창백한 피부. 레이의 손도 리츠처럼 차갑지 않을까.
혼자만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집에 가기 직전 레이는 마오 목에 붙어 있는 거즈를 떼어줬다. 상처도 거의 남지 않았고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아서 정말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해도 될까?’
어른이면서 그런 말투는 비겁하다. 운동화를 뒤꿈치까지 꾹 눌러 신은 다음 마오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바로 문을 열고 도망칠 수도 있지만 마오는 잠 든 리츠를 떠올리고 친구가 없다는 말이 왕왕 울리는 걸 느꼈다. 마오는 시선을 바닥으로 툭 떨궜다.
‘네.’
‘다행이구나. 부디 리츠와 사이좋게 지내다오.’
마오가 알 정도로 기쁜 음색이 느껴졌다.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나가려다가 마오는 다시 레이를 돌아보았다.
‘저, 사쿠마 씨가 흡혈귀인거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게 말꼬리를 흘리며 남자의 반응을 살폈다. 멀뚱히 질문을 듣던 레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예의바른 아이구나. 칭찬인지 아리송할 말을 하며 레이는 길고 하얀 검지를 세워 입에 가져다 댔다.
쉿.
속삭이듯 들린 목소리에 마오는 움찔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괴물의 집에 대한 기억은 거기서 끝이었다. 바로 옆집인 자기 집으로 가서 왜 이리 늦게 들어왔냐며 어머니에게 혼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 속에서 어리둥절해 했다. 방금까지의 비일상 속에 절여지다 온 탓에 한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었다.
어린 마오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비일상이 당연히 일상이 되었다는 걸. 평일 아침엔 자고 있는 리츠를 억지로 깨워 학교로 끌고 가고, 주말 오후엔 여전히 잠들어 있는 흡혈귀 저택의 무거운 커튼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마-군, 졸려. 그렇게 말하며 등에 엉겨 붙는 리츠의 어리광도 익숙해졌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했으면서 유메노사키 학원에선 사쿠마 형제가 흡혈귀인 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커다란 관을 가져다 두고 거기에서 낮잠을 잘 정도면 숨길 의사조차 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그 당당함 때문에 흡혈귀는 컨셉인게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낮을 힘들어 할 뿐이지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어느샌가 잊고 만다. 리츠가 흡혈귀라는 것도, 흡혈을 좋아한다는 것도.
마오는 핸드폰을 들어 몇 번이고 본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와줘.
간단한 문장에 소름이 돋았었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부회장이 “무슨 일이 있나, 이사라.”라고 물을 정도로 얼굴에 드러나 버렸다. 한여름이지만 학생회 실은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회장이 돌아오고 난 후 각별히 학생회실 상태에 신경을 쓴 부회장의 노력은 기온, 습도 유지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 서늘함 속에서 마오는 살을 익힐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고파졌다.
계기는 뻔했다. 트릭스타와 합동 연습 중 스튜디오에서 전학생이 실수로 바늘에 찔렸고 그 피를 리츠가 핥았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난 뒤. 붉은 눈동자가 선명히 발하는 걸 마오는 놓치지 않았고 그 시선과 딱 마주쳤다. 나중에 칭찬해 주기로 했잖아? 마-군. 덜 뜬 눈동자가 작게 휘어지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상도 줄 거지? 송곳니가 보일 것 같아 마오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침 학생회 모임이 있는 날이라 마오는 그 자리에서 먼저 빠져나올 수 있었다. 리츠에게서 빠져나올 수는 없었지만.
아픈 건 누구나 싫다. 특이 성벽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픈 것도 그렇지만 마오는 그 이상으로 하얗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특히 싫었다. 피부를 찢어 그 안에 숨겨진 혈액을 탐하기 위해 준비된 기관은 보기만 해도 소스라칠 정도로 싫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가끔의 흡혈을 허락하는 건 리츠의 어리광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그래도 저번엔 확실히 심했었다. 목덜미를 물어뜯다시피 달려들어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목과 살인 사건의 증거처럼 변해버린 벽지. 눈동자처럼 붉게 핏빛으로 번진 리츠의 입가를 보다가 마오는 기절했었다. 방학이어서 망정이지 학기 중이었다면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으로 등교할 뻔 했었다. 리츠도 정도를 넘어선 건 알고 있는지 그 이후로 잠잠했는데.
이제는 높지 않은 초인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벨소리가 길게 울렸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문을 밀었다. 문은 역시나 잠겨있지 않았다. 열린 대문 사이로 해질녘에 잠긴 집이 보였다.
마오는 괴물의 집에 갇혔다는 걸로 시작하는 호러 게임들을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미궁을 헤매는 주인공은 대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버리고 만다. 그 종막이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기를 마오는 어느 샌가 바라고 있었다. 사실 제일 좋은 건 더 이상 흡혈귀들에게 관여하지 않는 것. 학원 내에선 안그래도 마오를 괴롭히는 문제들이 많았다. 사쿠마 형제들과 관계를 끊으면 성가신 일이 줄어들 테고. 가 합리적인 결론일 텐데 마오는 그러질 못했다.
더 이상 휘말리지 말자고 수없이 생각해도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이게 된다. 마오가 무서워하는 송곳니를 숨기고 나른한 미소를 보내는 자신의 소꿉친구는 빠질 수 없는 마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마 오늘은 그 송곳니를 드러내겠지만. 어두운 집을 우울하게 바라보던 마오는 한숨과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뒤를 따르는 마오의 그림자는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마당에 길게 늘어지다가 문이 닫히면서 그마저도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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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받은 공약 마지막... 제트님의 리퀘 리츠마오입니다. 스바루 커플링일줄 알았는데
이벤트 참여 감사합니다 ><)♡
리츠마오 다이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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