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레오 - 어느 휴양지의 밤
* 츠카레오
* 여행 가서 싸움이라는 주제가 리퀘였는데 언제나처럼 이상한 방향으로 갑니다.
정계 가문으로 깊은 역사를 가진 스오우 가의 외동아들 스오우 츠카사는 돈을 씀에 있어 쓸데없는 낭비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세를 굉장히 싫어했다. 그와 동갑내기인 탓에 사교계에서 몇 번이나 얼굴을 부딪쳐야 하는 교양이라곤 털끝만치도 없이 한없이 버릇없는 어느 후계자 때문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돈을 허투로 쓰는 건 옳지 않다 여겼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프라이빗 비치를 예약할 걸 하는 후회로 가득 찼다. 대중의 시선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왕족이나 가질 법한 철학으로 적당한 가격의 휴양지를 선택했지만 당연히 이 여름철에 사람들은 가득했고, 더위가 가시는 여름 피서 대신 꽉 들어찬 사람들과 그 부대낌에 피어나는 습기와 짜증이 휴양지를 지배하고 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싸움이 날 정도의 이 날씨에 파트너 헌팅이라는 사유는 큰 싸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재차 말씀 드리는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자식아! 내가 멀리서부터 똑똑히 봤다고! 죽고 싶어? 그 멀끔한 면상을 좀 터프하게 만들어줘, 엉?”
츠카사는 억울했다. 그럴 의도는 정말 눈곱만큼도 없었기에.
이미 피서고 뭐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메이드가 타 주는 홍차가 간절한 차에 문득 코 끝을 스치는 향기가 있었다. 츠카사가 사랑하는 홍차 브랜드처럼 은은하면서도 열대 과일처럼 달콤하다. 가향차라면 반드시 사고 싶을 정도의 향. 사람이 홍차가 아닌 이상 스스로 향을 낼리 없으니 아마도 향수. 츠카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곧 선명한 색의 음료수를 무료하게 쪽쪽 빠는 한 남자에게서 그 향이 난다는 걸 깨달았다. 마시고 있는 주스 때문일까도 잠깐 고민했지만 같은 음료수를 든 주변의 사람에겐 그러지 않았다. 츠카사는 다이렉트로 나가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갑작스럽게 죄송한데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남자의 녹색 눈이 데구룩 굴러 츠카사에게 향한다. 이후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쓰시는 향수를 알 수 있을까요?’
‘향수?’
남자가 빨대에서 입술을 떼고 그렇게 되물었다. 곧 자기 어깨 쪽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어리둥절하게 대답했다.
‘딱히 뿌리진 않았는데. 호텔 샴푸를 말하는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잠시.’
츠카사는 에스코트라도 하듯 정중히 손을 내밀었고 남자는 망설이 없이 그쪽에 손을 턱하니 올렸다.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과연 아까보다 진하게 향이 느껴졌다. 사실 그의 주변으로 다가갔을 때부터 주변이 온통 꽃밭이라도 된 것 같았다. 역시 샴푸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려는 찰나에 남자의 노호성이 들려왔고 츠카사를 윽박지르는 이 상황에 도달했다.
향수를 묻는 게 그렇게 크나큰 죄인가? 츠카사의 부모님이 이 자리에 없으신게 다행인지 아닌지 모를 상황이었다. 마치 누가 보면 츠카사가 엉덩이라도 만진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남자에게 츠카사는 질린 참이었다. 당사자가 그런 게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하면 괜찮아 질 텐데 그는 고양이 같은 눈매로 미니 선풍기를 얼굴에 댄 채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향수를 여쭤본 참이란 말입니다!”
“향수는 무슨, 그 핑계로 손이나 잡았겠지!”
츠카사의 인내심이 거의 바닥날 순간에 문득 남자가 끼어들었다.
“아하, 너 혹시 알파?”
그건 이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상대방의 눈이 뒤집히기 직전까지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인가요?!”
“허여멀건한게 꼴에 알파라고?! 지금 당장 네놈을 바다 속에-”
“아아, 저리 좀 빠져봐. 그러니까 알파 맞지? 나한테 향기가 난다고?”
정신 차리면 녹색 눈이 바로 앞에 와 있었다. 호기심인지 무엇 때문인지 반짝거리고 있다. 달큰한 향이 뇌까지 잠식하는 기분이었다.
“나, 납니다….”
“그럼 얘는?”
남자가 분노에 차 있는 남자의 손을 붙잡고 내밀자 츠카사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자, 잘 모르겠는데요…. 그보다 전 향 감별사 같은 게 아닌….”
“재밌네! 좋아, 네 헌팅에 넘어가 줄게. 오늘 밤 같이 있자.”
“레오, 그게 무슨 소리야!”
비통한 비명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오라 불린 남자는 손을 휘휘 저었다.
“음, 너 아까부터 시끄러웠거든. 일단 장소 선택도 미스. 거기다 이런 사람 많은 곳에서 방치라니, 뭔가 잘해 볼 생각은 있는 거야? 이 뒤는 안 봐도 뻔하지. 이쯤에서 바이바이하자고.”
남자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레오는 완고한 태도로 몇 마디를 더 붙였다. 잠시 후 그렁그렁한 눈으로 변한 남자는 그대로 울먹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 버렸다. 개그 시트콤이라도 본 것처럼 얼빠져 있는 츠카사에게 레오가 냉큼 팔짱을 꼈다.
“자, 그런고로 책임져 주셔야겠어. 덕분에 일정이 통째로 날아갔다고.”
“무, 무슨 소리십니까?! 그쪽이 멋대로 한 행동이잖아요!”
“헌팅까지 했으면서 빼는 거야~? 설마 나쁜 남자 컨셉?”
아까와는 다른 억울함이 물밀 듯이 몰려와 츠카사는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헌팅이 아니라고요-!!”
*
“헤에, 엄청 좋은 방이잖아? 알고 보니 엄청 부자였던거~?”
“지금 남은 방이 스위트룸 밖에 없어서잖아요. 이게 다 그쪽 때문입니다.”
츠카사가 부루퉁하게 대답했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묵은 방 역시 스위트룸이지만 그것까지는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쪽이 아니라 츠키나가 레오! 걱정 마, 걱정 마. 나도 돈 많으니까 숙박비는 절반 줄게! 그보다 스오네 부모님은? 같이 왔다면서.”
레오가 하도 헌팅남 헌팅남이라고 부르길래 발끈하여 제 이름은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하고 외치니 남자는 또 멋대로 스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헌팅남보단 낫기에 츠카사는 불만을 꾸욱 눌러 삼켜야했다.
“…새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고 말씀 드리니 오늘은 놀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실제로 그의 부모님은 꽤나 반색을 했다. 츠카사가 밖에서 친구까지 사귀고 오다니, 여기로 오길 잘했다는 말까지 하셨다. 딱히 친구가 없는 티를 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여기가 맛있다느니, 사람 적은 곳을 안다느니, 이쪽 풍경이 끝내준다더니 등을 쉴 새 없이 나불거리면서 츠카사를 끌고 다니다가 해가 바다에 잠기자 숙소에 들어가자며 칭얼거렸다. 덕분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땀으로 온 몸이 엉망진창이에요. 먼저 씻겠습니다.”
“다녀와~”
레오는 스위트룸을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바빠 보였다. 저 사람은 지치지도 않습니까. 혀를 내두르며 츠카사는 욕실로 들어섰다. 잠시나마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를 느끼며 츠카사는 내리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았다.
‘잠깐.’
츠카사의 행동이 문득 멎었다.
‘이거 위험한 상황 아닌가?’
자칭 ‘헌팅’했다는 사람과 같이 같은 방에 들어왔다. 심지어 침대는 하나. 피곤해서 앞뒤 안 가리고 방을 잡긴 했지만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아닌지? 혼란 속에서 츠카사는 뿌연 욕실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대로 나가도 괜찮을까?
평소에 씻는 것보다 한참을 시간을 끌어 손바닥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버티던 츠카사는 결국 가운을 걸쳐 입고 쭈뼛쭈뼛 밖에 나갔다. 욕실의 후끈한 공기를 빠져나오자마자 느껴지는 건 예의 츠키나가 레오의 향기. 헌팅이다 뭐다 떠드는 시끄러운 남자와 붙어 있을 수 있었던 건 저 향기가 기분 좋아서이기도 했다. 남자는 아까까지 시끄러웠던 것과 달리 바닥에 깔린 양탄자에 늘어져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어쩐지 한숨이 나오는 걸 느끼며 츠카사는 레오를 툭툭 쳐서 깨웠다.
“바닥에서 주무시지 마시고 씻고 주무세요. 더럽습니다.”
“…아니, 애초에 스오가 너무 늦게 나온 거고.”
레오는 예상과 달리 쉽게 일어났다. 눈을 비비며 하는 말에 할 말은 없어서 씻고 편하게 주무세요 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했다. 비척비척 걸어가는 레오의 거한 하품 소리와 함께 욕실 문이 닫혔다. 괜히 깨운 게 아닐까? 그냥 바닥에서 자게 내버려둬야 했을까? 하지만 그 사람 땀 냄새도 나고 더러운 건 역시 좀. 씻고 나면 더 노곤해지니 그대로 자버렸으면 좋겠는데. 근데 만약 잠들지 않는다면?
괜히 초조해져서 츠카사는 방 안을 서성였고 물줄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멈추면 흠칫하고 또 다시 들리는 물줄기 소리에 안도를 반복했다.
이쪽은 헌팅을 부정했으니까 정말 휴양지에서 사귄 친구 개념으로…. 그보다 저 사람 내가 알파인걸 알아챘는데 어떻게? 설마, 설마 오메가….
츠카사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왜 이 생각을 지금 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츠카사는 오메가를 만나 본 적이 없다. 애초에 알파와 오메가 자체가 워낙 희귀한 지라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할 확률이었다. 그걸 또 기가 막히게 이런 곳에서…? 물론 소문은 익히 들어왔다. 그들은 히트 싸이클이 오면 농익은 열매처럼 달콤한 향기를 뿌린다고. 그렇다면 아까 남자가 왜 그렇게 츠카사에게 화를 냈는지도 이해가 간다. 히트 싸이클이 다가온 오메가에게 하필 또 알파가 집적인다면 누구나 그렇게 분노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일반 사람이 향수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그런 향이 나올 리도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
츠카사는 얼어붙은 채로 욕실 문을 바라보았다. 레오는 그럴 생각으로 여기에 온 것일까?
그 순간 물소리가 뚝 멎었다. 츠카사는 간절히 물소리가 다시 이어지길 바랐다. 혹은 욕조에 담그는 릴렉스한 시간을 가진다던가…. 그러나 허망하게도 문은 벌컥 열렸다. 욕실의 후끈한 기운보다 남자의 향기가 더 빨리 다가왔다. 츠카사는 저도 모르게 자기 하반신을 바라보았다. 아직, 아직 잠잠했다…!
“왜 그렇게 멍청히 서 있어?”
“네? 아뇨? 멍청히 있지 않고 여러 생각 중인데요!”
“와하하! 역시 재밌네, 스오는!”
츠카사와 마찬가지로 가운을 입은 레오가 휘적휘적 걸어와 컵에 물을 따랐다. 츠카사는 저도 모르게 방 안을 살폈다. 침대가 있고, 테이블이 있고, 소파가 있고. 남자가 침대에서 자면 츠카사는 자연스럽게 소파에서 자면 된다. 침착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머리가 핑핑 돌았다. 스오우 츠카사 인생 전대미문의 사태에 조상님이 온갖 신호를 삐용삐용 보내는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그런 츠카사와 달리 레오는 평온해 보였다. 들고 온 가방에서 조그만 통을 꺼내고 약 같은 걸 꺼내어 물과 함께 삼킨다.
“…무, 무슨 약을 드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뭐긴, 당연히 억제제지. 향이 질질 새고 있다면 슬슬 하겠다는 소리니까 먹어둬야지.”
츠카사의 머릿속에서 법정에서나 들릴 땅땅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 당신 역시 오메가였나요…? 아, 걱정 마세요. 제가 나갈 겁니다. 제가 나갈게요. 스위트룸 좋죠, 편히 쉬시고 오늘 즐거웠습니다. 그럼 이만….”
가운만 입고 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옷은 사면 된다, 방은 구하면 된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여기를 나가야 한다.
츠카사의 행동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지 모를 레오가 츠카사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뭘 멋대로 오해하는 거야?”
“오, 오해! 좋은 말이네요! 그러니까 츠키나가 씨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그거 말고, 오메가 말이야. 누가 언제 오메가라고 했어?”
“네?”
레오의 얼굴이 불쑥 앞으로 다가왔다.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은 얼굴이 츠카사를 이리저리 뜯어본다.
“그래서, 향 아직도 나?”
“네? 네….”
“정말 재밌단 말이야. 좋은 향이 난다고? 스오, 나는 알파야.”
아까 나와 있던 녀석이 오메가. 그런데 그 녀석에게서 향은 못 맡고 내게 난다고?
덧붙인 말에 츠카사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향은 분명 레오에게서 나고 있다, 당시 그 분노하던 남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붙잡힌 손이 강하게 끌어당긴다. 멍하니 있는 사이에 레오는 손쉽게 츠카사를 침대 위로 쓰러트렸다. 푹신한 침대 위에서 조명을 등진 레오가 츠카사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목가를 킁킁거리며 맡은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오에게도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바디샴푸 냄새인가? 스오도 알다시피 보통 알파끼리는 서로의 향을 경계해. 적대적이란 말이야. 하지만 너는 그렇지 않은 거지?”
츠카사는 부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가까이 다가온 레오의 향기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어쩌면 하반신도 반응을 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대답하지 못하는 츠카사를 레오가 만족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키스라도 할 것처럼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은밀하게 속삭였다.
“있잖아, 스오. 알파끼리도 할 수 있을까?”
응? 알려줘.
아주 달콤한 유혹이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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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레오 맞음.
알파x알파였습니다! 너무 딴짓이 하고 싶어서 리퀘를 받았고 버스정류장인 저는 이것도 버스로 해볼까로 이어진 결과가...
풍님 주제 감사드립니다! 저도 여행 가고 싶네요...
+추가
존자르르르 풍님께서 이걸로 만화를 그려주셨어요........ 오져버린다!!!!!!!!!!!!!!!!!!!
모두.. 모두 봐주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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