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레오 전력 - 오해
* 츠카레오
* 오리지널 안즈가 나옵니다.
* 가볍습니다.
* 지각... 그것은 숙명... 아니 정말 죄송합니다....
“앗, 오해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누님이 생각하신 그런 게 아니고―....”
양지 바른 잔디밭에 딱 쉬기 좋게 자리 잡은 나무 그늘. 흡혈귀라고 자칭하는 어느 형제의 동생이 잠을 자고 이상하지 않을 공간에 있는 것은 같은 유닛의 두 사람. 신뢰를 가득 담은 채 여왕을 떠받들 듯이 우러러 보곤 하던 보라색 눈동자를 보여줬지만 이번만큼은 당황으로 흔들리고 있는 스오 츠카사. 그의 무릎에는 옆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모를 기세로, 심지어 츠카사의 교복에 침까지 흘리며 푹 잠든 나이츠의 리더 츠키나가 레오.
분명 안즈가 제대로 본 것이 맞다면, 츠카사는 방금 전까지 저 잠든 이마 위로 입술을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동성 간의 이마 키스는 자상한 부모가 자기 전 아이에게 내리는 굿나잇 키스, 혹은 팬서비스가 풍부한 아이돌이 팬을 의식한 의도적인 신체 접촉 정도였다. 물론 츠카사와 레오가 속한 나이츠는 팬에게 아낌없는 서비스를 하기로 유명한 유닛이었지만 지금은 졸음이 한가득 다가온 점심시간에, 관객이라곤 뽈뽈 움직이는 개미 정도뿐인 교내의 정원이었다.
츠카사는 자신 무릎 위의 남자가 깨는 걸 걱정하듯이 한껏 낮춘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Leader의 이마 위에 벌레가 붙어서요. 손으로 칠까 하다가 그럼 괜히 일어나서 시끄럽게 굴 것 같아서 후 불어서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구도에 따라서 오해하기 좋은 모습이었을 것 같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씀드립니다만....”
그녀보다 어린 후배는 진심으로 곤란해 하고 있었다. 안즈는 손을 내저었다. 어쩐지 파파라치가 된 기분이었지만 그녀는 다른 학생의 부탁으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 있었을 뿐이다. 안즈 역시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건넸다.
“방해라뇨. 누님이 찾아와 주시면 오히려 큰 영광이죠. 이 츠카사는 누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누님이 모두의 프로듀서이기에 욕심을 부릴 수 없는 게 아쉬울 정도예요.”
신사의 품격을 잔뜩 갖춘 목소리로 선망의 대상을 바라보듯이 후배는 말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평소의 츠카사였다. 안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음에 있을 라이브에서 나이츠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살짝 귀띔해주었고, 자세한 것은 멤버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전해줄 거라고 했다. 츠카사는 기뻐하는 기색을 여실히 보이며 안즈가 부끄러워질 정도의 찬사를 더 읊었다.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이런 미사어구를 직접 받아내는 건 그녀에게 조금 힘겨웠다.
앉은 채로 깍듯이 인사하는 후배를 뒤로 하면서 안즈는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청 잔소리를 하며 쫓아다녔는데 언제부터 무릎베개를 해줄 정도로 친해진 걸까. 이러니저러니해도 츠카사는 나이츠의 리더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 이후로 이상의 모습이 아닌 것에 이것저것 소동이 많았지만 결국 돌아온 리더를 따르게 되는 것은 정해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고 안즈는 생각한다. 츠카사가 동경해서 들어오게 만든 그 나이츠를 만든 사람이니까.
‘나이츠는 걱정 없겠네요, 츠키나가 선배.’
왠지 바람도 자상한 오후 같았다.
그런 오후 같았는데....
“오, 오해예요, 누님! 지금 이 상황은 말이죠―....”
바싹 마른 잎사귀가 떨어지는 교정, 그 쓸쓸한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츠카사가 팔을 크게 휘두르며 허둥거린다.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안즈는 분명히 봤다. 아까까지 저 팔이 그와 가깝게 붙어 있는 한 남자를 부둥켜 끌어안고 있었다는 걸.
“Leader가 절 멋대로 난방기구 취급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준 겁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꽤 날씨가 추워졌잖아요? 이 시기에 감기라도 걸리면 이만저만한 폐가 아니니까요...!”
“안즈, 웃츄~!”
후배가 열심히 말하거나 말거나 당사자인 레오는 양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인사를 한다. 웃츄, 라는 인사를 같이 보내긴 했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영혼이 없는 제스처였다. 물론 레오는 그걸 탓하지 않았다.
“Leader도 한 말씀 하세요. 누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고요!”
“어어~? 응. 스오, 엄청 따끈따끈하거든. 이렇게 안으면 난방기구로 최고야! 앗, 안즈의 분홍 후드도 굉장히 따뜻해 보이네―.”
“이 무슨 경박한! 누님에게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하려는 건 아니시겠죠?”
어느새 둘이 또 아웅다웅 다투고 있었다. 누님에겐 좀 더 경의를 가지고 대해라느니, 스오는 너무 딱딱하다느니. 당사자는 아무 말도 안했는데 끝없는 예송논쟁 급의 말들이 오간다.
안즈는 일단 그 둘을 멈추게 했다.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태도가 아니었다.
“누님이 오해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츠카사가 침통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방금 건 정말 난방기구 취급이었을 뿐이니까요. 제가 억울할 정도입니다.”
안즈는 생각했다. 난방기구 취급을 당한 츠카사 군도 같이 끌어안고 있었는데?
“맞아. 코타츠 전원을 스오가 꺼버렸다고! 대신할 게 필요하지 않겠어?”
츠키나가 선배, 여긴 스튜디오가 아니에요. 건물 밖인데 코타츠가 있을 리가요.
하지만 츠카사 얼굴 전면에 떠오른 결백이 안즈를 망설이게 했다. 이 1학년 후배는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게 서툰 편이었다. 특히 그녀의 앞에서는.
안즈는 어정쩡하게 둘에게 동의를 했다. 추우니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잊지 않으며.
“역시 누님은 상냥하십니다! Leader도 좀 본받는 게 어때요?”
“스오야말로 안즈에게 대하듯이 나에게도 존경의 태도를 갖추는 건?”
“당신이 먼저 그럴 만한 행동을 보여주셨어야죠!”
다른 주제를 가진 예송논쟁은 또 계속되는 것 같았다.
“누님, 오해입니다.”
츠카사가 헐떡이며 말했다. 누가 보면 달리기라도 하고 온 줄 알겠지만 전혀 그럴 상황이 일어날 수 없었다. 일단 이곳은 뛰기에 적합하지 않은 좁은 공간, 나이츠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스튜디오였으며 츠카사는 달리기는커녕 서있지도 않았다. 그는 어떤 연유에선지 바닥에 누워있는 매번 오해 속에 있던 남자, 레오 위에 올라타 입과 입이 닿다 못해 얽힌, 아주 진한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즈는 부회장 케이토에게 부탁 받은 라이브 관련 서류를 전해 주려고 스튜디오에 방문했고, 노크에도 아무 대답 없는 문을 혹시나 해서 열어본 것뿐이었다. 그리고 약 30초가량 서로의 몸이 들썩이는 어떤 신체적 접촉을 라이브로 보고야 만 것이다.
이번엔 어떤 상황일지. 안즈는 제법 흥미롭게 츠카사의 말을 기다렸다. 어린 후배는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분명 자기 얼굴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겠지만―입가를 소매로 문지르며 대답했다.
“실은 레... Leader에게 가르침을 받았어요. 부끄럽게도 저는 지금 당장 이 건물이 무너지더라도 신고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무력한 자였습니다. 이 심각한 무지에 Leader도 공감하시고 여러 응급처치를 알려주셨어요. 그 일환으로 방금 건 인공호흡이었답니다. 그래서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미숙한 자니까요.”
보라색 눈동자가 자조를 표하며 슬픈 듯이 바닥으로 내리깐다. 자신의 무력함을 통감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얼굴이 발그레한 레오가 고개를 끄덕인다. 츠카사처럼 입가를 따라 흔적을 남긴 어떤 체액을 닦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안즈는 물론 알고 있었다. 인공호흡을 할 때는 한 손으로 아래턱을 쥐고 입을 벌리게 한 후 한 손으론 코를 쥐어야 한다는 것을. 츠카사의 두 손은 정석적인 자세를 그대로 따르는 대신 양손으로 얼굴을 붙잡는 변칙적인 방법을 쓴 것을 보고말았다. 숨을 불어넣기는커녕 오히려 그 숨을 집어삼키려 한 것 역시도. 그 둘에겐 안타깝게도 안즈의 시력은 건재했고, 그 둘이 안즈를 눈치 채지 못한 시간은 꽤나 길었다.
“자꾸 이런 상황으로 오해 받아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님은 이 츠카사를 믿어주실 거지요?”
후배가 필살의 타이밍에 쓴다는 3인칭이 튀어나왔다. 안즈는 고개를 젓고 싶은 자신과 끄덕이고 싶은 자신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전자는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대한 일갈의 욕망이었고 후자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후배의 자조와 간절이 섞인 멋진 미소와 이 상황에 벌써 질렸는지 펜을 들고 작곡을 시도하는 선배 속에서 안즈의 상반된 마음이 캔자스 외딴 시골집의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쳤다.
결국 안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둘 외에도 안즈가 신경 쓸 아이돌은 많았고, 일도 아주 많았다. 츠카사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안도한 기색이 완연한 그에게 모른 척 서류를 건네주고 미팅 시간을 말해준다. 그리고 작별인사로 말한다. 응급처치 열심히 배우라고. 츠카사는 그에 얼굴을 붉혔고 안즈는 이것을 지적하지 않을 눈치는 가지고 있었다.
“....”
어둠이 거뭇하게 도시를 덮는 늦은 밤, 유메노사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라이브가 코앞으로 다가올 경우엔 더더욱. 크고 작은 라이브가 연이어 벌어지는 이곳에서 오히려 불 꺼진 복도는 어색한 경우가 많았다. 그중 불이 켜진 방음연습실. 방음연습실은 문이 제대로 닫혀야 비로소 방음이라는 그 큰 기능을 할 수 있다. 문이 열린 방음연습실은 그냥 연습실이다.
안즈는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연습실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도구는 사람이 사용하기 나름이니까. 역시 탓하려면 문도 제대로 닫지 않은 사람에게 해야 한다.
희미한 불빛을 흘리며 잔뜩 새어나온 소리는, 어찌 보면 연습 때 흘러나오던 소리와 비슷했다. 이를 테면 격렬한 안무 후에 음향을 끄고 음료수로 목을 축이며 어깨까지 차오른 숨을 고를 때라던가. 하지만 이에 덧붙여 뭔가 젖은 소리와 함께 잔뜩 고양된 목소리로 원, 투, 쓰리!를 외치는 대신 어느 이름을 연호하고 있다면?
여기서 빨리 눈치 챘어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안즈는 잔뜩 몰아친 업무로 무척 피로한 상태였다. 잘못이 있다면 주위의 소음을 제대로 짚지 않은 자신이라고 그녀는 슬프게 회상했다.
열린 문틈사이로 본 광경에 안즈는 그대로 꽁꽁 얼어붙었고, 공교롭게도 상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래에서 쳐올리는 어떤 행위에 잔뜩 흐물흐물 녹아 열로 가득 찬 녹색 눈과 말이다. 날카롭게 눈꼬리가 올라간 눈동자도 꽤나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야살스럽게 풀렸다. 붉은 머리칼이 출렁이는 목덜미를 끌어안던 손 하나가 풀리더니 곧게 뻗은 검지를 살짝 입에 가져다 댄다. 그 작은 몸짓만으로도 쉿―, 이라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안즈는 그제야 마법에서 풀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조용히 물러나기 직전에 문도 제대로 닫는 이성적인 판단까지 내릴 수 있었다. 두꺼운 문이 소리 없이 닫히자 복도는 원래 지니고 있어야 할 정적을 되찾았다. 방음연습실은 그들의 소리를 철저하게 막아줄 것이다. 그게 연습이든, 무엇이든 간에.
더 피곤해진 기분으로 안즈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모른 척은 어떤 후배의 오해라는 말로 시작되는 필사적인 변명을 막아줬다는 게 작은 위안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도 힘들 테지. 그녀의 행복회로가 신나게 가동되고 있었다.
결국 어느 프로듀서가 흘린 한숨이 처량하게 발자국 소리를 쫓는다. 그녀에게는 반갑지 않지만 아직 밤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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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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