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레오 - 자장가 (밤바다 외전)
* 츠카레오
* 오메가버스, 엠프렉, 2세 주의
* [밤바다]에서 1년 정도 후의 이야기입니다. 당연하지만 샘플에도 본편의 네타가 있습니다.
밤바다는 여기에서 확인을.. http://rooas.tistory.com/64?category=529051
(개쩌는 표지는 풍님이 그려주셨습니다. 다이스키...)
유난히 문이 크게 닫히는 날이 있다. 바람이라도 불었는지, 기분 상 그렇게 느껴지는지.
텅 빈 집에 크게 울리는 소리에 레오는 멍하니 문을 바라보았다.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방금 문을 닫고 집에 들어온 건 레오였다. 센서로 반응하는 현관의 조명도 금세 꺼졌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양 레오는 베란다로 달려갔다. 커다랗게 거실을 차지한 창문을 열자마자 얼얼한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졌지만 레오는 개의치 않고 그대로 베란다 난간을 붙잡았다. 고층 높이에서 보이는 미니어처 같은 풍경에서 익숙한 인영은 보이지 않았다.
레오는 1층까지 내려가서 배웅을 했던 작은 모습을 떠올린다. 아이는 차에 타서도 레오에게 신나게 손을 흔들었었다. 그 차가 멀어질 때까지 레오도 손을 흔들었고, 차의 뒤꽁무니마저 사라져 한참이 지나서도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끌고 집으로 올라왔었다. 이제 와서 내려다본들 그 모습이 보일 리가 없었다.
시린 공기지만 하늘은 새파랗게 맑았다.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시골에 놀러가는 아이에겐 덧없이 좋은 날씨일 것이다. 그 선명한 푸름 아래에 펼쳐진 풍경을 레오는 멀거니 돌아보았다. 대체적으로 깨끗한 건물들, 방학을 맞아 낮에도 조용한 초등학교, 그 근처에 자리 잡은 작은 도서관, 나무들이 적당히 심어져 있는 공원, 가까이 있는 놀이터에는 슌 또래의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뭐가 좋은지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아마 누구나가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에 정말 최적인 환경이라고. 몇 걸음 채 걷지도 않았는데 방이 끝나고, 얇은 벽 너머로 이웃집 싸우는 소리가 훤히 들리던 어떤 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아마 집을 고른 남자는 여러 후보들 중에서 철저하게 주변 환경 등을 따진 끝에 이 집을 선택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한 아이를 위해 준비된 곳, 그 한가운데에서 레오는 이방인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며칠이, 몇 달이 지나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집은 그 집마저도 레오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생각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레오는 이곳에서 해야 할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그중에는 겨울바람을 맞다가 감기에 걸린다는 멍청한 행동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지 않는 걸 되새기며 레오는 베란다에서 몸을 돌렸다. 얼어붙은 공기가 사라짐과 동시에 침묵이 들어찬다.
당분간 레오는 이 집에서 혼자였다.
슌은 친구의 시골집으로 놀러가기로 했다.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환경과 갑자기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 아이는 기특하게 적응하려고 노력을 했고, 결국은 자주 입에 담던 친구에게 시골에 같이 놀러가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더 이상 아빠와 좁은 집에 갇혀 살던 조그만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레오는 기뻐했다. 아이를 잘 부탁드린다며 전화 너머의 상대가 볼 수도 없는데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감사와 부탁의 말을 건네는 것도 지금까지 없었던 경험이었다. 당분간 혼자가 된다는 외로움 정도는 슌이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다면 잠시 접어둘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아빠인, 츠카사는 일주일간 출장이 잡혀 있었다. 아이보다 하루 먼저 떠나야 하는 남자는 슌이 잠들기 전 여행에 대해 여러 당부의 말을 건넸고, 마지막에는 재밌게 다녀오라며 아이의 조그마한 머리통에 다정함을 가득 담은 입술을 내렸었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
상념을 깨트리듯 갑작스럽게 들리는 벨소리에 레오가 화들짝 놀랐다. 이제는 제법 잘 챙기고 다니는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스오 츠카사라는 액정의 글자에 레오의 손이 급하게 통화를 눌렀다.
"…츠카사?"
[네, 레오. 저예요. 옆에 슌 있어요?]
"방금 출발했는데…."
[아, 한 발 늦었네요. 다녀오기 전에 전화 한 통 할까 했었거든요. 어쩔 수 없죠. 거긴 날씨 어때요, 괜찮아요?]
"응, 아주 좋아."
[춥지는 않나요? 가기 전에도 꽤 쌀쌀했는데…. 당분간 혼자잖아요, 감기 조심하시고요.]
"…응. 츠카사도."
[그럼 이만 끊을게요. 나중에 집에서 봐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곧 전화가 끊어졌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 전화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레오는 얌전히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마도 그는 원래의 목적인 자신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을 것이다.
슌에게 츠카사는 좋은 아빠일까?
가장 큰 변화였을 또 다른 '아빠'가 생겼다는 사실을, 그것도 레오가 자주 입에 담던 '스오' 라는 것을 아이는 어떻게든 소화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츠키나가 슌에서 스오 슌이 된 아이는 '스오'였던 TV너머의 먼 인물을 '츠카사 아빠'로 부르게 되었다. 좁은 집과 이 집의 유일한 공통점인 슌의 그림엔 레오와 슌이라는 고정된 인물에서 아이와 같은 머리색을 하고 키가 더 큰 츠카사가 추가되었다. 그림 속의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박제된 행복한 가정. 웃고 있는 주황색 머리의 사람을, 붉은 머리의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레오는 고개를 숙인다. 이 그림이 레오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었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 사랑하던 자신의 막내 기사와 결국에 맺어져 알파와 오메가라는 제 2의 성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관계를 돈독히 해줄 것이며,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레오의 수많은 망상들 중에 가장 깊은 마음이 들어갔을 그러한 망상.
아이의 작은 손은 행복을 그려야 하지만, 레오는 그러면 안 됐다. 크레파스로 얼룩덜룩한 얄팍한 종이를 들추면 그 곳에 있는 건 오메가를 혐오하는 알파와 그 알파를 범한 오메가, 그 사이에 태어난 비극적인 아이가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레오만은 그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사람은 왜 일을 하는 가--- 놀면서 살 수 없는 가아----"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느닷없이 외쳤다. 다행히 연구실 안에 있는 건 소리를 지른 당사자인 카가와 뒤에서 책을 보고 있던 레오뿐이었다. 레오는 책에서 시선을 떼고 카가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회전의자의 내구도를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빙빙 돌리고 있었다. 실험이 그의 의도대로 잘 되지 않은 모양이다. 익숙해진 레오와 눈이 마주치자 카가가 급 멈췄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일을 하기 싫어도 츠키나가 씨의 월급은 꼬박꼬박 나올 테니까요. 저의 일하지 않는 의지와 월급은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돈은 어차피 대표님이 주시니까!"
"딱히 그걸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츠키나가가 아니고 스오."
"아~ 그랬죠. 하지만 영 입에 안 붙는다니까. 스오란 이름은 이미 후원자님이잖아요? 물론 츠키나가 씨가 후원자님의 이거라는 건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모를 수가 있나. 웨딩마치를 보면서 밥도 얻어먹었는데. 어이쿠, 또 츠키나가 씨라고 해버렸네요."
"그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제가 밀림의 왕자 레오를 좋아해서요. 제 안의 레오는 아름다운 흰 사자로만 남겨두고 싶습니다."
"이름 쟁탈전에서 져버렸잖아?! 하지만 이건 나름 괜찮네. 동물과 인간이 이름을 걸고 싸우고 결국은 인간이 패배했다는 이야기..! 흥미로워! 이걸 그대로 음악으로 만들면 첫 마디는-"
뒤이어 이어지는 정적에 레오는 입을 다문다. 그의 안에 있던 스피커는 경쾌한 음의 폭포대신 음소거를 누른 것처럼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에게 음악의 포기는 이제 일상적인 것이었다. 레오는 악상을 떠올리는 대신 얌전히 보던 책을 다시 잡았다. 아까까지 보던 내용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첫 장부터 더듬어 가야 할 판이었다. 카가가 그런 레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츠키나가 씨, 최근엔 노래 별로 잘 부르지 않네요."
"…그런가? 나 그렇게 시끄러웠어?"
"느닷없이 소란스러워지는 게 백미였죠. 요즘은 뭐랄까, 조용하죠. 원래 츠키나가 씨는 이랬나? 싶을 정도고."
"나이를 먹는다는 걸지도."
"저만 두고 다들 나이를 먹는 군요. 그 중에서 독보적으로 빠르게 먹는 것 같은 대표님에게 위로의 말씀 올리고 싶네요. 여튼, 츠키나가 씨는 재밌죠, 우울한 블루스 속에서 왈츠 추는 괴상한 느낌이라 좋아합니다. 아, 불륜의 권유는 아니에요. 실험자와 실험체 사이에 오가는 우정 정도로 받아들여 주세요."
"으음, 나 일단은 카가 조수 일도 1년 넘었는데 그에 관련한 우정 같은 건 안 쌓였어?"
"첫 인상이 끝까지 남는 타입이어서 말이에요. 물론 츠키나가 씨가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을 것 같은 저의 조수 역할을 맡아줘서 저는 좀 더 근사한 생활을 하게 됐으니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 수다를 받아주는 게 제일 중노동이죠? 산재 처리는 대표님에게 부탁합니다. 어이쿠, 또 이야기가 샜는데, 츠키나가 씨 컨디션이 저조해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요. 오늘이, 유독, 이런 느낌이지만요. 감기라도 걸렸나요? 옷도 평소보다 두꺼운 거 입고. 아니, 두껍다기 보다 크네요."
카가의 말에 레오는 어리둥절하게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을 보았다. 소매자락이 손등까지 덮여 있고 품도 굉장히 넉넉하다. 레오는 부리나케 외투를 벗었다. 손에 붙들린 짙은 회색 천의 옷은 언젠가 본 기억에 있는 츠카사의 외투였다. 아연히 옷을 내려다보는 레오를 보며 카가가 씨익 웃었다.
"아-, 과연, 과연. 스오 가의 미래는 밝군요. 제 걱정이 갈 곳 없는 오지랖이라는 걸 알아서 기쁩니다. 커플 만세, 솔로 지옥."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거 후원자님 옷이잖아요?"
카가의 손가락이 레오가 붙잡고 있는 옷에게 똑바로 향한다. 당황한 레오가 급히 아무 말을 어물거렸다.
"그러니까, 이건, 손에 집히는 대로 입고 나가다가, 우연히…."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뭐 이것저것 귀찮은 것도 있고 그런 거 별로라는 것도 있고 제 개인적인 관점에선 이해가 하나도 안 되고 저거 왜 하지 라는 입장이지만 어딘가에선 자기 거라고 도장 찍는 일이 필요할 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각인, 말입니다."
혼자 마구 떠들던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후원자님이 어디 멀리라도 가셨나봐요? 아 궁금한 건 아니고요, 츠키나가 씨 증상을 보니 짐작이 가서 하는 말입니다. 후원자님의 자금줄 외에는 일말의 궁금함도 없습니다."
츠카사의 출장 소식을 누구에게도 떠든 적은 없다. 하물며 츠카사가 굳이 연구소에까지 와서 떠들 리도 없었다.(하물며 츠카사는 레오가 알파와 같이 일한다는 말에 조금 내켜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레오는 귀신이라도 보는 것처럼 카가를 바라보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 투성이었다.
"카가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뇨아뇨 전혀 노릴 생각은 없습니다. 후원자님은 유부남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 취향에 1도 들어맞지 않으니까 그런 경계는…. 아, 이게 아니라고요?"
레오의 고갯짓에 카가는 금세 평안을 되찾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가의 시선이 옷에 가 있자 레오는 저도 모르게 그 옷을 붙잡고 있었다. 카가는 물론 그 누구도 옷을 뺏어가지 않을 텐데.
"츠키나가 씨가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이 메이저한 건 아니지요. 하지만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
문이 닫히고, 현관의 주황불이 반짝 켜진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집안은 암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레오는 판타지에 나오는 하얀 로브의 마법사처럼 불을 하나하나 키며 가득한 어둠을 몰아낸다. 조금의 망설임 후에 레오는 제일 안쪽에 있는 방의 불도 킨다. 레오와 츠카사의 침실. 가운데 놓인 침대에는 옷장 정리라도 하려는 것처럼 옷들이 쌓여 있다. 소매가 긴 흰 셔츠, 아이보리색 재킷, 검은 폴라티, 군청색 셔츠 등등. 레오가 입고 있는 외투와 마찬가지로 모두 츠카사의 옷들이었다. 언제 이렇게 꺼냈을까.
평소보다 좀 추운 것 같아서, 자신보다 덩치가 큰 츠카사 옷을 입으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납득할 만한 명분을 자신에게 쥐어주며 당연하다는양 그의 옷을 찾았던 것 같다.
'둥지 틀기라고 알아요?'
카가가 그렇게 말했었다.
'각인한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서 가끔 보이는 현상인데, 두 사람이 오랫동안 만나지 않거나 먼 거리에 떨어져 있으면 본능적으로 상대의 체취를 찾으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주로 오메가가 알파의 체취가 남은 옷가지를 모아서 주변에 둥글게 쌓는데, 이걸 새의 둥지 같다고 하여 둥지 틀기라고 하는 거죠.'
슌이 돌아오기까지, 츠카사가 돌아오기까지는 아직 며칠이 더 남았다. 옷은 그가 돌아오기 전에 세탁을 맡기면 될 것이다. 지금은 괜찮을 지도 모른다. 레오는 비척비척 침대 위의 옷가지들에게 다가갔다. 그대로 그 위로 몸을 쓰러트리자 그가 원하던 냄새가 한껏 가까워졌다. 저도 모르게 기분 좋은 한숨이 흘렀다.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현상이죠. 그니까 두 사람의 사이가 그만큼 돈독하다는 증거? 러브 클리닉에서 나올 것 같은 말은 여기까지로 하고. 둥지 틀기 증상이 시작되면 히트 싸이클이 올 확률이 높으니 당분간 쉬세요. 아, 참고로 그 증상은 후원자님이 돌아오면 자연히 완화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괴짜지만 상냥함도 갖추고 있는 박사는 레오에게 며칠간의 휴가도 주었다. 무색무취 오메가라도 히트 싸이클이 온 상태에서 알파가 있는 직장에 오는 건 말도 안 된다면서. 후원자님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는데.
레오는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아야 했다. 만약 레오가 그 상태로 출근해도 카가가 츠카사에게 살해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전제부터가 틀렸다. 레오는 츠카사와 각인을 맺지 않았다. 각인뿐일까, 레오와 츠카사가 관계를 맺은 건 레오가 저항 못하는 츠카사 위에 올라탔던, 그 몇 년 전의 병원에서 단 한 번뿐이었다. 그 이후로 츠카사와 몸을 섞은 적은 없었고, 손 끝 하나조차 제대로 닿은 적도 없었다. 당연했다. 츠카사는 오메가를 혐오한다. 그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나쁘지 않은 몸 상태에서 레오를 원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건 슬프게도 스오 츠카사는 츠키나가 레오는 물론 스오 레오에게 역시 그러한 감정을 품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그런 츠카사도 알파인지라 러트가 찾아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츠카사는 약을 먹거나, 그걸로도 억제가 안 되면 집을 나갔다. 그가 나가서 누구랑 자는지 레오는 알 수도 없고, 물을 수도 없다. 다행인지 아이는 이미 한 명이 있다. 부부관계에 대해 면전에 대놓고 무례하게 묻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무도 속사정을 모른 채 그들은 문제없는 보통의 가정으로 보일 것이다….
비참하게도 레오 안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라는 고단한 화살표는 지금도 츠카사에게 향해 있다. 그것이 지나쳐 강간까지 이어지고, 거기서도 정신을 못 차린 몸은 상상이나 다름없는 기형적인 각인 속에서 자기 멋대로 츠카사를 그리워하고 있다. 같이 산다고 네 것이 된 줄 알았어? 바보 같은 츠키나가 레오. 죗값을 치르고 있는 스오 레오가 비웃었다. 이제 포기해.
레오는 품 안에 있는 셔츠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츠카사의 향이 깊어질수록 몸이 점점 더 달아오른다. 마치 츠카사에게 안겨 있는 것 같았다. 실상은 그의 다정한 포옹 하나도 받지 못했는데. 망상과 체념이 뒤섞이고 있다. 결국 츠카사와 가정을 이루었다. 그것만으로 만족해. 아예 보지 못하는 것보다 나아. 나를 평생 봐주지 않아도 좋아. 계속 옆에 있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축복이야. 열에 이지러진 머릿속에서 대법관이 결론을 내렸다. 엄숙하게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야.
알고 있어. 이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는 걸.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내가 할 말이 아니라는 건 알아. 하지만, 옆에 있으니까 자꾸 욕심이 생겨.
사실은 사랑 받고 싶어. 그것까지 바라지 않아. 마음껏 소리 내어 사랑하고 싶어.
"…츠카사, 츠카, 사… …. 스오…."
레오는 어느새 소리 내어 그의 마음속에서 가장 새빨간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스오, 스오…."
품 안의 스오 츠카사는 거부하지 않는다. 아직 그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던 유메노사키 시절처럼 엉겁결에 레오의 기행을 받아주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레오는 두 팔로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스오, 미안해, 미안…. 좋아해… 사랑해."
품 안의 츠카사는 어쩔 수 없다는 한숨과 함께 레오를 마주 안아주었다. 그 상냥한 손길에 눈가가 점점 뜨거워졌다. 있을 수 없고, 있어선 안 되는 손길이기에 더 간절했다.
상냥한 환상 속에서 레오는 눈을 감는다. 주위에 가득하던 온화한 향기들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작았던 츠카사는 어느새 커져서는 레오를 마주 안아주었다. 허상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슌에게 했던 것처럼 레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짧은 키스를 내렸다. 적나라한 소망과 나란히 끝없는 자기혐오도 꿈틀 거린다. 제발 그 누구도, 이 기만적인 환상을 볼 수 없기를.
무엇이든 받아들여 주는 츠카사에게 레오는 노래하듯이 사랑 고백을 계속한다. 온갖 연가들이 찬란하게 빛나며 그들 주위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마치 축제 같았다. 사랑은 아름다운 거야. 누구보다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하길 원하는 레오는 물론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핑크빛 하늘에 오색 종이가 뿌려지고 주위의 사람들은 사랑을 찬양하며 웃고 있다. 거대한 뮤지컬 무대마냥 모두가 춤을 추었고 그 속에는 레오도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며 잔뜩 열기에 달아오른다. 현실에서 고요히 침잠하던 레오라는 거죽을 벗어던지고 무대를 누비며 이 사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어떻게 자신의 마음이 사로잡혔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거대한 환호 속에서 어질어질한 머리로 레오는 생각한다. 이렇게 남김없이 다 토해내야 한다고. 너무나 유쾌하지만 결국은 끝이 날 퍼레이드 송 뒤에 기다리는 건 용서되지 않은 마음을 잠재워야 하는 자장가뿐인 걸 알기에 레오는 품에 옷을 가둔 채 조각난 사랑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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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방문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던가 기타 등등도 하고 싶었지만 일반 입장 14분 전이라 이것도 부리나케 씁니다. (썼습니다.... 티스토리에서 덧붙이는 말)
RT 이벤트에 당첨되신 초연님의 리퀘 [둥지 틀기(巣作り)] 였습니다.
이벤트 참여 감사드리고 이런 책에까지 표지 그려주신 풍님 정말 감사드리고, 출력소에서 뽑아주신 미나비님도 정말 감사 드립니다.
밤바다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뻤어요. 감사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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