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약 특전은 판매전 시작 한 시간 후에 선착순 배포로 돌릴 예정이니 행사장에 늦으실 경우는 미리 말씀 주세요!
회지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구호에 맞춰
각각 불륜 / 로맨스를 테마로 합니다. 소재 주의 부탁드려요.
성인 츠카사 x 성인 레오
성인 츠카사 x 초등학생→중학생 레오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아이를 제일 맞이한 건 기억에도 없는 하얀 천장이었다. 밋밋한 천장에 이지러지는 기묘한 무늬가 생겼다가 눈을 깜박이면 사라지고 다시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다. 아이는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방 안에 덩그러니 놓인 침대에 아이가 있고 팔꿈치까지 옷소매가 접힌 팔에는 길고 얇은 관이 연결돼 있었다. 이질적인 것에 겁에 질린 아이가 조심조심 줄의 끝을 살폈다. 뒤집혀진 유리병에 있는 투명한 물이 천천히 줄로 떨어지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매번 팔에 달고 있는, 그러니까 링거라고 했던 것 같다. 병 안의 물은 아직 남아 있었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과,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조금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아이는 언제나 신기한 게 좋았다. 제 일을 하며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은 투명한 관에 연결되어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물방울의 모험이다. 여러 것이 가득 들어차 있는 몸에서 이리저리 빠져나오며 꿋꿋이 모험을 할 물방울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왔다. 물방울의 모험을 알리는 노래다. 즐거운 선율 속에 불현 듯 고함소리가 귓가에 들어찼다.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화를 내는 아주 익숙한 목소리. 아이는 퍼뜩 놀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고함은 아이의 귓가에서만 들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무얼 말하는 지는 아주 간단했다. 아이는 집에 돌아가야 했다.
손등에 연결된 줄을 그냥 빼도 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어머, 일어났네?”
흰 옷을 입은 간호사가 아이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여긴 병원이야. 여기 오기 전 일은 기억나?”
아이는 고개를 저었고 간호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 치였었어. 세게 부딪힌 건 아니고 살짝. 검사를 해봤는데 크게 아픈 곳은 없었어. 그래도 나중에 아파질지도 모르니까 그 때는 꼭 병원 오기. 알겠지?”
이번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저기, 부모님에게 전화 했어?”
“앗, 어머니가 걱정하시니?”
“아니, 괜찮아. 전화하지 말아줘. 잠시 만요. 맞아― 폰이 있어.”
허둥지둥 헤매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화면을 켜면 밝은 글자로 새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일이 생겨서 늦게 들어가니 저녁은 먼저 먹으렴. 아이는 크게 안도했다.
“이제 괜찮아. 문제없어요.”
간호사는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금방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래? 다행이네. 집에 연락은 안 해도 괜찮아?”
“너무 늦기 전까지 집에 돌아가면 돼요. 이거 물이 다 사라질 때까지 있어야 해?”
“똑똑하네! 그래, 맞아. 저 병 안의 물이 다 떨어지면 집에 가도 돼요. 여기에 조금만 누워 있으면 되니까. 그렇지, 곧 있으면 어른이 올 거야. 차 주인인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러 올 거야. 나쁜 어른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여기에 입원시켜 준 것도 그 사람이니까 편하게 있으면 돼. 그럼 푹 쉬고 있어.”
끝까지 상냥한 어조로 말하며 아이의 이불을 도닥여주고 간호사는 문을 나섰다. 아이는 눈을 데구룩 굴렸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에 얼핏 보이는 바깥은 아주 새까맣게 물들지 않았다. 시간은 6시도 되지 않았다. 그제야 아이는 병원의 베개에 드러누웠다. 물방울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 이 따뜻한 곳에 있을 수 있다. 아이는 다시 일정하게 떨어지는 투명한 물방울을 바라본다. 구불구불한 여행을 생각하면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간호사가 말했던 어른이 온다는 소식은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물방울 병정들의 대행진 속에서 어느새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병의 물은 3분의 1정도가 남아 있었다. 아이가 대답이 없자 조금 후에 문이 열렸다. 간호사보다 더 높은 키의 사람이 들어왔다. 아이는 침대 속에서 덜 깬 눈으로 그 사람을 보았다. 어른 남자였다. 아버지랑 비슷한 키. 아이는 몸을 조금 움츠렸다.
“제가 깨운 건가요? 미안해요.”
남자의 목소리는 아주 듣기 좋았다. 귀를 파고드는 낮으면서 예쁜 목소리. 불현 듯 아이는 남자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분명 그가 부르는 노래는 어떤 자장가보다 편안하고 부드럽게 좋은 꿈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남자가 발걸음을 멈췄다. 아이가 누워있기 때문에 그런 걸까. 버릇없다고? 아이는 이불에 파묻힌 몸을 조금씩 일으켰다. 옆으로 돌아누워서 그런 지 머리가 뻗친 것 같았다. 아이는 손으로 머리를 누르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이는 의아하게 그를 보다가 손을 흔들었다.
“저기, 괜찮아?”
잠시 후 남자가 다가왔다. 아까보다 빠른 걸음이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남자는 갑자기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것이 아이의 대답을 원하는 말 같지 않아서 아이는 잠자코 이상한 남자를 보았다. 남자가 침대로 다가와 허리를 낮춘다. 열이라도 재는 건가. 남자는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볼을 차례로 매만졌다. 꼭 처음 보는 동물이라도 발견한 것 같았다. 아주 가까이에서 본 남자의 눈은 선명한 보라색이었다. 눈동자가 반짝이나 싶더니 흘러내린다. 상대와 마찬가지로 신기한 동물처럼 남자를 구경하던 아이는 처음으로 당황했다. 다 큰 어른이 눈물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울고 있었다. 입원해야 되는 건 이 사람 아냐? 아이가 어찌할 바 모르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아이는 그런 행동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양복을 입은 남자의 팔이 아이를 끌어안았다. 답답할 정도로 끌어안고는 크게 울어버린다. 아이는 익숙하지 않은 남자의 향수에 감싸여서 멍청하게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무슨 상황이지? 여기는 사실 외계인의 우주선인건가? 이게 외계인식 인사법인 건가! 나도 울어야 되나? 아이는 고민했지만 어른은 여전히 끅끅 대며 울고 있었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어 보였다.
고민한 아이는 어쨌든 외계인 식으로 인사해 보기로 했다. 꿈틀거리며 팔을 빼고 등을 대충 마주 안았다. 그리고 토닥였다. 남자의 등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손이지만 어쩐지 효과는 충분했다. 남자는 흠칫 놀랐고 뒤이어 아이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눈물로 젖은 뺨이 아이에게 비벼졌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이제 남자는 사과까지 하고 있었다. 아이는 으깨지는 감자의 기분을 느끼면서도 어린 아이처럼 우는 남자가 괜히 불쌍했다. 어쨌든 저렇게까지 우는 사람에겐 보통 슬픈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남자가 드디어 아이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대신 양팔을 꾸욱 잡고 소금기가 들어가 있을 것 같은 목소리로 얼굴에 닿을락말락하게 말하고 있었다.
“내 잘못인데...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남자의 얼굴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너무 가까웠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과 맞닿고 비벼진다. 에―. 아이는 분명 이런 비슷한 소리를 내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내던 혀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그건 아주 기묘한 감각이었다. 혀와 혀가 닿아 소스라쳐서 밀어내려는 걸 등을 감싼 남자의 팔이 방해한다. 그 움직임에 더 파고들어서 아이는 속절없이 질척이는 것들을 받아내야만 했다. 혀가 얽히고 이 안쪽을 핥고, 천장까지 훑는다. 그건 입을 크게 벌려야 하는 치과 치료와는 전혀 달랐다. 몸 안쪽이 이상하게 간질간질해서 더 이상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보다 숨이 너무 막혀왔다. 결국 아이는 한계까지 차오른 숨에 어찌할 바 모르고 남자를 힘주어 두들겼다. 곧 아이는 해방되어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차오른 숨을 급히 뱉어냈다.
“미안해요. 너무 오랜만이죠. 너무 급했어요. 미안해요, 당신은 아직 어린데―....”
남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턱까지 흘린 침을 소매로 닦으며 아이는 처음으로 남자를 경계했다.
“너 누구야?”
“네...?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론데. 누구냐고. 나 알아? 아니면 역시 외계인? 외계인의 인사법은 울다가 끌어안고 혀를 비비는 거야?”
남자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입을 열고 몇 번이나 말을 할 것처럼 입을 달싹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잠시 남자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요. 그러니까 기억이 없다는 거죠? 너무 반가운 마음에 실례를 저질렀어요. 맞아요, 이럴 수도 있어요.”
“...뭘 말하는 거야? 너 역시 외계인이지? 외국어도 아닌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놀랐죠. 미안해요, 내 잘못이에요. 그러니까 아까 한 건 외계인의 인사가 아니고 연인에게 하는 인사에요. 나는 당신과 그런 사이였으니까. 아니, 이젠 그럴 사이가 되겠죠.”
“여전히 못 알아듣겠는걸! 너는 어른이잖아. 어른은 어른과 사귀어야지. 나는 어른이 아니고 여자도 아니야.”
“물론 그건 알고 있어요. 당신은 남자고, 지금은 아주 작네요. 초등학생일까요?”
커다란 손이 머리에서 등까지 천천히 쓸었다. 조금 이상한 기분에 아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는 펑펑 울었으면서 남자는 붉어진 눈으로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 문제가 안 되죠.”
“차에 치인 건 내가 아니라 너 같은데. 머리를 다친 거야?”
“으음, 전 멀쩡하니까요. 당신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의사에게 검사 결과는 들었지만 그래도 걱정 돼요. 어디 아프거나 한 건 아니죠?”
“급한 건 아저씨 같아. 어서 가서 검사를 받아봐.”
“아저씨.... 당신에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하다못해 형이라고 해주면 안 돼요?”
“외계인 형? 그건 재밌는 것 같아! 그거랑 형으로 부르는 건 별개지만.”
“당신은 여전하네요. 이상하죠, 당신이 있을 땐 제대로 말하라고 언제나 타박했는데. 그런 말들이 너무 그리웠어요.”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의 연속이었다. 남자의 손이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걱정 말아요. 이제 당신은 내가 지켜줄게요.”
“차로 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거 이상하지 않아? 그리고 그런 대사는 공주님에게 하는 거야. 아저씨도 동화책은 봤을 거 아냐.”
“물론 봤죠. 하지만 저는 왕자님이 아니에요. 굳이 따지자면... 초등학생 남자아이에게 발정하는 사람이거든요.”
남자의 손이 아이의 허벅지에 가 있다. 아이는 그 손을 보고 남자를 본다. 토끼 눈이 된 남자가 다시 웃었다. 그리고 볼에 가볍게 쪽 하는 뽀뽀를 남겼다.
“아하―, 그러니까 위험한 사람이라는 거네?”
“부정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걱정하지 마요, 큰 무리는 안 시킬 거니까.”
남자는 아까보다 한결 진정돼 보였고 레오는 커다란 리트리버 같은 덩치로 엉엉 우는 것보단 멋있는 척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조심스레 아이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잡아보다가 다시 눈을 마주쳤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지금의 당신 이름을 알려주시겠어요?”
아이는 그 말이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이상한 지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따뜻한 남자 손이 나쁘지 않았기에 아이는 자기 이름 정도는 알려주자고 생각했다.
“마츠자카. 마츠자카 레오.”
남자가 한 번 아이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레오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어른이잖아? 맘대로 해.”
“그럼 기꺼이. 참, 제 소개를 안했네요. 저는 스오 츠카사예요. 호칭은 당신이 편한 쪽으로 불러주세요.”
남자는 한 쪽 손을 가슴에 올린 채 허리를 숙이는, 어떤 신사처럼 혹은 어떤 기사처럼 그렇게 정중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