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스테/A1b) 츠카레오 소설본 - 벌레
사양
앙스타 츠카사x레오 / 성인본 / A5 / 72p / 인쇄본 / 7000
(사양 변경에 따라 가격도 변경 됐습니다.ㅠㅠ)
부스
어나더 스테이지 A1b
나이츠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미래 설정으로 츠카사가 레오를 납치, 감금합니다.
취향 타는 소재가 있으니 주의 부탁드려요ㅠㅠ)
성인본이므로 97년생 이상부터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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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츠카사쨩, 어서 와!”
이제 막 시작된 주말의 열기를 뒤로하자 아라시의 목소리가 반갑게 울렸다. 밖은 차가운 바람이 사정 없이 앙상한 가로수를 흔들어대는데 이곳은 따뜻하다 못해 덥기까지 한 열기가 가득하다. 회식 자리로 애용될 것 같은 술집의 공기를 어색하게 해치며 도착한 방에는 선배들의 얼굴이 조로록 모여 있었다. 예나 전이나 소녀 같이 꺅꺅 거리며 자신의 옆 자리를 내주는 아라시, “카사 군, 늦었잖아.” 라며 뚱한 표정으로 그에게 볼멘 소리하는 이즈미, 벽에 머리를 기대어 졸고 있는 리츠까지. 상에는 화려한 안주들이 잔뜩 놓여있지만 모델과 아이돌이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거의 그대로인 음식들을 흘낏 살피며 츠카사는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미리 알려줬으니 괜찮아~ 요즘 바쁘지?”
“어딜 가나 불황이니까요. 저, 근데 Leader는...?”
오랜만에 나이츠가 모이는 날이었다. 유메노사키 졸업 후, 예전처럼 하나의 유닛 아래 있던 것도 잠시, 각자의 길을 걷게 된 지 몇 년이 지난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자리를 가져 서로 변하는 모습들 속에서 마른 꽃다발처럼 버석이는 추억의 향기를 조금씩이나마 맡았다. 그 가운데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았던 그들의 리더도-굉장히 놀랍게도-매번 참석했었다.
“아- 임금님은 오긴 왔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갔어.”
“...그렇군요.”
오후부터 몰아닥치는 일 더미에 뭐하나 챙겨 먹을 틈도 없어 텅 빈 속이지만 이상하게 식욕은 전혀 나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집어든 젓가락은 갈 곳을 못 찾다가 샐러드에 뒤섞인 양상추 조각 하나를 겨우 집어 들었다.
“스-쨩, 서프라이즈 있는 거 알아?”
“어머, 미리 말하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지!”
츠카사는 고개를 들었다. 졸고 있던 리츠가 어느새 눈을 반쯤 뜨고 가늘게 웃고 있었다. 그를 짧게 타박한 아라시가 곧바로 츠카사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이건...?”
“임금님의 전언이야.”
아무리 봐도 카드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츠카사는 어리둥절하며 받았다. 입구를 봉하고 있는 금색 스티커를 떼고 역시나 딱딱한 카드로 보이는 모습에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남녀가 마주 바라보는 카드의 앞면. 그리고 멋들어진 필기체로 쓰인 금박이 입힌 글씨. 영어에 익숙한 츠카사는 단박에 그 글자들을 읽을 수 있었다.
-Wedding Invitation
아무것도 먹지 못한 속이 뒤집힐 것처럼 울렁였다. 당장이라도 카드를 집어던지고 기가 차다는 듯이 웃어주고 싶었지만 선배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그럴 순 없었다. 한가한 아라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받고 깜짝 놀랐지 뭐야? 그 임금님이 청첩장이라니.”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그 말대로라면 쿠마 군이 먼저 했어야지.”
“...확실히 surprise긴 하네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하며 츠카사는 내용물을 펼쳤다. 곧바로 들어오는 ‘츠키나가 레오’라는 익숙한 글자, 그 바로 밑에 낯설지만 여성일게 분명한 어느 이름이 반듯하게 적혀 있다. 이즈미도 이 상황이 마땅찮은지 목소리에 날이 서있다.
“이것만 던져주고 자기는 휙 가버리다니, 진짜 제정신?”
“그것도 그래. 이런 날엔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 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주는 거잖아? 명색이 청첩장 받는 날인데, 정말이지-.”
선배들의 목소리와 술집의 소음이 한데 뭉쳐져 귓가에서 윙윙대는 와중에 츠카사는 글자가 많지 않은 청첩장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리츠가 말했다.
“스-쨩이었나? 임금님 좋아했던 거.”
“어머, 그러고 보니.”
츠카사에게 시선이 쏠렸다. 츠카사는 청첩장을 덮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랬었죠...”
“1학년 츠카사쨩 정말 귀여웠는데! 임금님만 만나면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사랑하는 남자아이도 세계의 보물이라고~”
“그랬던 카사군도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어른이 돼버렸지만. 임금님도 그렇고 말이지. 정신이 있는 거야? 이런 중대사를 통보하고 가버리는 게 어딨어?”
“이즈미쨩, 아이들은 언젠가 어른이 되는 거야. 알고 있으면서~”
테이블 너머로 쿡쿡 찔러대는 아라시를 이즈미가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쳐내고 그 옆에서 리츠는 스-쨩, 밥 먹어 라며 접시를 밀어준다. 그에 대답을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흐릿하고 꿀렁인다.
짝사랑이었지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짝사랑이다. 그 사랑의 화살표가 향하는 당사자는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이츠의 리더인 그는 스스로에게 쏟아져 내리는 음악상을 끌어내기에도 바쁜 사람이었다. 그런 제멋대로인 모습에 휘둘리면서 어느새 츠카사는 연정을 품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츠카사가 마음을 자각하기 전까지, 그리고 그의 유일한 왕이 학원을 떠나기까지. 일 년도 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감정은 짝사랑의 쓰라림보다 솜사탕 같은 달콤함이 더 진했다. 유메노사키라는 그들의 공통점이 사라지는 날에, 벚꽃을 맞으며 학원을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츠카사는 그 달디 단 감정을 접는 것을 택했다. 이 마음은 사랑보다 동경에 더 가깝다고, 자신과 너무 정반대의 모습에 흥미가 당긴 거라고, 사람을 좋아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고. 츠카사가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유메노사키에 새로운 봄이 찾아오고 나서도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마음은 그의 생각대로 빨리 사그라지는 듯했고 츠카사는 자신의 판단에 만족했다. 그것이 오산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건 츠카사가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휴대폰이 부부 거리며 연락을 알렸다. 발신인은 나루카미 아라시. 졸업식에 못 갈 것 같으니 그 전에 나이츠 멤버끼리 만나자는 말이었다. 개인 SNS로 꾸준하게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나이츠 원년멤버가 모두 모이는 자리는 처음이었다. 나이츠의 명실상부한 리더가 되었을 때에도 언제나 각별한 존재였던 선배들이기에 츠카사는 당연히 만남에 응했다.
기억하는 모습과 거의 그대로인 외모, 변하지 않는 말투. 성인이 된 그들은 유메노사키에 있을 때처럼 츠카사를 막내 취급하며 그간의 공백을 말로 채워나갔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지 않을 리 없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도 가슴 가득 들어찬 행복감은 여전해 츠카사는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꿈은 무의식의 연장이라고 했던가. 츠카사는 사방이 기쁨으로 별처럼 반짝이는 꿈을 꾸었다. 처음은 분명 그랬다.
눈앞에서 술잔이 오간다.
츠카사는 풀린 눈으로 그 모양들을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찰랑이는 잔은 그대로 벌어진 입속으로 투명한 액체를 쏟아 부었다. 주위가 웅웅댔다. 이즈미쨩 너무 빨라. 오늘은 마실 거라고 했잖아. 그래도. 츠카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세상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나이츠의 모임은 이렇게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만나도 조용한, 음식이 깔끔한, 인테리어도 괜찮은-분명 모델인 선배들의 취향에 맞춘-가게이곤 했는데 이런 퇴근 시간대에 붐빌 시끄러운 술집으로 잡을 때부터 이상하긴 했다. 분명 약속 장소에서 청첩장을 도전장인양 던지고 사라진 그들의 리더에 대한 화풀이로 급 이곳으로 변경됐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가장 먹을 것에 깐깐한 이즈미는 작정한 듯이 잔을 채우고 있었다. 와중에 안주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게 그다운 점이지만 빈속에 들이붓는 술이 좋을 리 없었다. 남의 사정에 신경 쓸 정도로 츠카사가 여유 있는 건 아니었다. 눈을 깜박깜박해도 제대로 초점이 안 잡히는데 손은 이즈미가 채운 술잔을 쥐고 있다. 카사 군도 적당히 마셔! 사이에서 고생이네요, 나루카미 선배. 츠카사는 남 일처럼 생각했다. 벽에 기대어 자고 있는 리츠가 보였다. 술집이 파도에 잠긴 것처럼 일렁였다. 그 때 꿈처럼. 나이츠 선배들과 평온한 일상. 꿈인 만큼 말도 안 되는 장소에서 츠카사는 선배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일렁이는 세상 한가운데 리더가 있었다. 아니 츠카사 아래에 레오가 있었다. 뜨겁고 축축한 꿈이었다. 흰 시트에 흐트러진 머리칼이 얼마나 관능적이었는지, 눈시울이 젖은 채로 가늘게 웃는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 라이브를 막 마쳤을 때도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츠카사는 굉장히 흥분해버렸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폭풍이 쓸고나간 듯한 여운에 한동안 아무것도 못했을 정도였다. 정신을 차린 후엔 바로 화장실에 가야 했지만.
한동안 바빴으니까, 제대로 못 빼기도 했고. 제법 이성적인 머리로 그렇게 상황을 판단했다. 리더를 오랜만에 봐서 그렇게 꿈이 이어진 거야. 생각해 보면 가슴이 있었던 것도 같아. 우연히 리더의 얼굴을 하고 나온 가상의 인물. 조금 붉어진 얼굴을 문지르며 그렇게 상황을 정리했더랬다.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날에 또 레오가 나오는 꿈을 꾸고 말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보았다. 여성이 가진 풍만한 가슴은커녕 밋밋하기만 한 그 가슴에 츠카사는 코를 비비며 향을 맡고 그와 함께 아래의 결합을 깊이 했다. 상대가 달콤한 신음소리를 흘린다. 허리짓이 격렬히 이어지고 등을 달리는 쾌감에 몸을 떨면서 눈을 뜨면, 아까의 열락 같던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익숙한 천장과 식은 기온이 츠카사를 맞이했다.
그 이후부터였다. 교복을 입고 리더인 그의 모습에 설레어하던 시절엔 없었던, 진득한 욕망이 츠카사 마음속에 고이게 된 건. 처음부터 있었지만 눈치 못 챘던 걸 수도 있다. 솜사탕 같은 폭신한 감정은 그의 의지로 사라졌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한 육욕이라는 이름의 생소한 욕망이 모습을 드러낸 걸 수도 있다. 츠카사는 그걸 직시할 수 없었지만 무시할 수도 없었다. 가끔 이루어지던 자위의 대상에 꿈의 레오가 번번히 등장했다. 스쳐지나가며 본 광고의 잔재 같던 그 이미지는 날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어딘가 과장되어 츠카사의 흥분을 부추겼다.
츠카사가 대학생이 되어서, 유메노사키에서 벗어나 각자의 길을 걸을 때도 나이츠의 모임은 이어졌다. 정기적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의례 누군가가 나이츠를 소집하곤 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이번 달에 누구의 생일이 있다, 봄이 싫다, 좋은 가게를 발견했다, 오랜만의 오프다. 그렇게 만나는 면면에서 레오는 쾌활하게 분위기를 흔들었고 츠카사는 꿈과 사뭇 다른 그 모습에서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 날들이 시간을 꾸역꾸역 잡아먹으며 이어졌다. 다른 사람도 사귀었지만 꿈과 현실의 괴리에 얼마 못가 헤어져버리곤 했다. 웃기는 일이었다. 성격이 안 맞는다거나 같은 이유가 아닌 잠자리에서 츠키나가 레오가 아니라는 이유로 파국을 맞이하다니. 상대편에게 그렇게 고할 수 없지만 매번 버티지 못하고 츠카사는 이별의 말과 함께 상대를 연인이란 이름의 자리에서 밀어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연수를 다녀오고, 이제는 스오 가가 이끄는 기업의 일원이 되었을 때도 츠키나가 레오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그의 삶인 것 마냥 기약 없이 이어졌다.
“물론 알고야 있지, 그렇게 제멋대로인 녀석이란 거. 하지만 중대사인데 이걸 던지기 전에 간단히 소개 정도는 시켜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우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임금님은. 여전히 폭군이야. 언제까지 우리 머리 위에 있을 셈? 지금이라도 그 왕좌에서 끌어내려 줄 수도 있다고.”
얼굴이 제법 붉어진 이즈미가 그렇게 투덜댔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건 아라시다. 고개를 끄덕이고, 츠카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카사 군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 사람은 여전히 모르겠어요.”
츠카사가 얌전히 대답했다. 중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제멋대로 흔들리는 세계 속에 앉아있는데도 목소리는 의외로 멀쩡하게 나왔다.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것들은 매번 이러지. 이쪽은 준비도 안됐는데 멋대로 떠나버려.”
이번에도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즈미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말을 여는 걸지도 모르지만 츠카사에게 그저 모두 자기 이야기 같았다. 자기 이야기였다. 츠카사는 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츠카사의 사정이, 츠카사와 레오의 사정이 빠져 있다. 이즈미가 알 도리는 없을 그런 사정이. 여기 있는 선배들이 기억하는 스오 츠카사는 자신의 감정도 제대로 못 숨기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실수를 연발하던 미숙한 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선배들의 귀여움을 받기엔 충분한 유닛의 막내. 그 막내는 큰 짓을 저지르고 말았답니다,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 술이라는 변명으로 몸을 감싸고 평소에 하던 더러운 생각을 끝내 실천하고 말았지요. 입술 사이로 비실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조와 자기혐오와 동시에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이 폭발할 것처럼 꿈틀댔다.
그들의 왕이 급작스럽게 나오지 않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한다면, 눈앞의 선배는 무슨 얼굴을 할지 츠카사는 궁금했다.
저번 나이츠 모임에서도 지금처럼 술을 진탕 마셨다. 차이점이라면 그 때엔 레오도 제대로 참석하고 있었고, 츠카사는 얼굴에 붉은 손바닥 자국을 장식처럼 달고 만났다. 하필 모임이 있는 날에 헤어지고, 성격 있는 여자에게 뺨이 힘껏 올려붙여진 츠카사는 어색하게 한쪽 얼굴을 감싸고 들어가야 했다. 안 그래도 눈썰미가 좋은 선배들이다. 당연히 손자국은 금방 들켰고, 막내도 어른이 다 되었다는 감상과 함께 위로라는 명목으로 다 같이 마셔주는 분위기가 되었다. 날뛰던 레오도 그날만큼은 얌전했던 것 같다. 크게 상심한 건 아니지만 마다할 이유도 없어서, 그날 모임은 결국 목까지 차오르는 알콜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낯선 천장과 머리를 강타하는 두통 속에서 츠카사는 끙끙대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두통을 단숨에 날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제대로 묶이지 않아 어깨 밑으로 흐트러진 주황색 머리, 흰 셔츠. 그 밑으로 뻗어진 흰 다리.
“Leader..?”
등을 보인 상대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평소에 불러도 대답이 늦는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작곡에 집중했을 때나지, 츠카사가 온 걸 알아채면 그의 이름을 길게 부르며 화사한 웃음을 짓곤 했다. 츠카사의 목소리를 들은 게 명백한 상황에도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있는 옷가지를 주워들어 서둘러 다리를 집어넣고 있었다. 셔츠와 덜 입은 바지 사이로 보이는 허벅지에 저절로 눈이 가면서 멍청해지는 기분이었다. 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면서도 츠카사는 레오의 손목을 급히 잡았다. 이불이 미끄러지면서 레오보다 더 입은 게 없다는 걸 깨달은 츠카사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자, 잠시 만요. 저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레오를 붙잡은 채로 주위를 둘러본다. 아마도 모텔 방. 특유의 기묘한 소독 냄새와 낮일 텐데도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창문, 작은 화장실. 그런 곳에서 바지를 입고 있는 리더와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는 자신. 뻔하다면 뻔한 상황이지만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여기에 누워서 있던 일들 모두.
“죄송해요, 제가 왜 여기 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그제야 레오는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으로 묶여있던 머리가 풀어져 있는 위화감이 가득한 그가 츠카사를 직시했다. 그 모습은 그가 아는 나이츠의 리더가 아니고 오히려 꿈속에 나오던... 츠카사는 입술을 달싹였다.
“뭔가 알고 계시면 말해주세요. 저흰 그러니까-.”
“몰라.”
레오가 대답했다.
“나도 기억 안나. 많이 마셨거든.”
너도 그랬지만. 평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레오가 그렇게 말했다.
“눈 뜨니까 네가 옆에 있었고. 지금은 보시다시피 옷을 주워 입고 있고.”
“그럼, 이런 상황이니까...”
레오는 대답이 없었고 츠카사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평소라면 상상해 보라며 외쳤을 남자도 묵묵부답이다. 다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이 레오는 다시 몸을 틀어 바지를 입으려 했다.
“잠깐만요, Leader. 입으시면 안 돼요.”
츠카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어리둥절한 레오에게 다가간 츠카사는 주저하다가 침대 옆의 티슈 한 장을 뽑았다.
“흘러나와요.”
셔츠 아래로 감춰져 있는 둔부 아래로 이어진 허벅지를 따라 끈끈한 흰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숨을 삼키는가 싶더니 레오는 티슈를 받아들어 대충 문질렀다. 그의 손짓마다 은근히 보이는 허벅지와 그로 이어지는 엉덩이 선.
“이런 건 상관없어.”
“속옷도 입지 않으셨어요.”
멈칫한 레오는 바지에서 발을 빼고 신경질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답지 않게 말도 적고 눈도 안 마주치는 모양새가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빨리 피하려는 걸로 보여서 츠카사는 다시 레오를 돌려세웠다.
“남아있으면 몸에 좋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왕 이렇게 됐으니 끝까지 처리해요.”
말하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정말 자신이 그와 그런 일을 한 건지, 이건 사실 오해가 있다든지. 애초에 남자와 남잔데. 그와 동시에 아까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허벅지를 끈끈하게 감아 내리던 정액. 얼마나 그 안에 부어냈던 걸까. 일어나면 흘러나올 정도로 가득 찰, 아마 자신이 했을, 그러나 전혀 기억나지 않는 행동의 일련들. 미칠 것 같은 와중에도 츠카사는 끝까지 말할 수 있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카사 군?!”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츠카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고개를 숙인 채로 졸고 있었다. 츠카사가 반문할 필요 없이 이즈미가 말을 이었다.
“완전 별로야! 제대로 정신이 박힌 여자라면 그 나이에 결혼을 한다는 생각을 하겠어? 그것도 한창 활동 중인 가수가?”
“사랑에 미치면 그럴 수도 있어. 이즈미쨩도 알잖아? 사랑은 무서운 거야.”
기대어 졸던 리츠가 이제는 아예 바닥에 누워서 누군가의 겉옷을 덮고 잠들어 있는 와중에 유일한 대화의 상대인 아라시가 말했다. 이즈미는 코웃음을 쳤다.
“그건 사리분별도 안 되는 사람이란 말?”
“이즈미쨩은 하면 안 될 말이네.”
아라시의 한숨 섞인 웃음소리가 흘렀다. 그 대화들을 가만히 듣고 있던 츠카사는 조금 후에 그들이 떠드는 대상이 청첩장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상대 여자라는 걸 깨달았다.
“나이가 어려요?”
조금 더듬거리며 츠카사가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응. 이제 갓 성인이 된 아이야. 요즘 한창 인기인 주말 드라마 있잖아? 그 ost를 부르고 꽤 유명해졌어. 그 전까진 얼굴 없는 가수였는데~”
“그 곡을 쓴 건 임금님이고. 유명이고 뭐고, 결국은 임금님 좋다고 쫓아다니는 나부랭이잖아? 임금님도 보는 눈이 너무 없어. 애초에 생각을 하긴 한 건가?”
난 별로야. 술잔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는 소리엔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래도 임금님이 선택한 사람이잖아. 임금님에게만 먹히는 매력이 있을 지도-.”
“상황이야 보나마나 뻔하지. 한창 작곡 도중에 말했을 테고, 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임금님이니까 정신없는 와중에 적당히 대답했겠고.”
부정을 하고 싶지만 있을 법한 상황이라 테이블은 금세 조용해지고 문 밖에서 들어오는 다른 소음들이 슬금슬금 들어왔다.
“둘이 눈 맞아서 그런 거라면 말도 안 해. 요전 주말 오프에 임금님이 갑자기 집에 쳐들어온 적이 있었거든? ‘주말인데 여기서 뭐하냐고, 임금님 연애 안 해?’ 하니까 뭐라고 대답한 줄 알아? ‘못해’ 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고. 그랬던 사람이 결혼?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게 언젠데요?”
츠카사가 불쑥 물었다.
“Leader가 세나 선배 집에 찾아온 게 언제쯤인가요?”
“흐음? 대충 한 달 전인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해? 라는 기색이 역력한 이즈미에게 대답 대신 츠카사는 술 대신 물을 들이켰다.
레오와 연락이 되지 않은 건 한달 언저리였다. 그 전까지는 우스울 정도로 연락이 잘 됐다. 심지어 만나기도 여러 번 만났다. 츠카사는 책임을 질 생각이 있었고 레오는 기사도라며 놀리긴 했지만 약속은 어울려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연결 고리는 유메노사키에서 추억으로 접혔을 시간을 다시 만들어내었다. 영화관도, 공연도, 저녁 식사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1박 정도의 여행도. 서로의 시간이 맞는 한에서 언제든지 어울려주었다. 메신저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설레고, 설레어 심장이 제 할 일을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한 나날이었다.
그리고 고백을 해버렸다.
어느 때보다 일에 치인 하루였다. 스트레스가 목구멍까지 가득 찬 와중에, 그는 시간을 쪼개어 만나러 와주었다. 무거운 어깨만큼 밤이 짙어진 검은 하늘 아래서 그가 나타났고, 어린애 다루듯 머리를 쓸어주며 힘내라는 말을 들으며 벤치에 앉은 채 츠카사는 그를 올려다보며 고백을 해버렸다.
그 이후로 무섭게 내려앉던 침묵을 츠카사는 기억한다. 당황이 가득한 표정으로 츠카사를 내려다보다가 말을 할 듯 말 듯 입을 껌벅이던 그는 조금 후에 크게 웃었다. 평소처럼 사방으로 퍼지던 명랑한 소리 대신 이상한 호흡이 실린 억지웃음이었다.
‘스오~ 우리들은 남자잖아? 남자들끼리는 좀 이상한 거 아냐? 곡의 소재는 될 것 같지만. 아~ 역시 안 될 것 같아. 그냥 좀 재미있고, 불쾌한 이야기로 들려.’
상냥하게 위로하던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연극 대사를 뱉듯이 남자는 질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간의 내 행동이 너를 착각하게 했다면 미안. 너와 그런 일이 있던 것도 내가 딱히 그 쪽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오히려 아무 생각도 없는 행동들이니까. 그냥 돈 많은 도련님과 놀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었어. 곡을 쓸 때도 도움이 될까 싶었고, 자극이 필요하다고 해야 하나? 그게 지나쳤던 거네. 나도 정도를 모른다니까.’
레오의 말이 모양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사방으로 가시가 뻗친 말일 거다. 섣불리 손으로 집으려고 했다가 잔뜩 찔려 상처만 입을 뿐인.
‘그나저나 스오 가도 큰일이겠어? 하나 뿐인 후계자가 남자한테 고백하다니. 이른바 흑역사라는 걸 내가 실시간으로 목격중인 건가?! 가십 잡지들의 좋은 먹잇감인데. 하지만 모른 척 해줄 테니까 너무 걱정은 말고. 그냥 없던 일로 하자.’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나불나불 떠들던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가 잠시 후에 말했다. 그럼 이만. 츠카사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레오는 그대로 멀어졌다. 어두운 밤거리에 그 모습이 삼켜지는 걸 츠카사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당연하게도 연락은 그 이후로 끊겼다. 그리고 그의 유일한 의사는 다른 사람 손으로 전해 주는 청첩장이다. 주는 게 고마울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 형체를 띤 거절은 지금 츠카사 옆에 얌전히 잠들어 있다.
좋은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레오와 관계를 가졌지만 어디까지나 우발적인 사고였고, 애초에 그가 남자를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레오는 그런 일쯤은 익숙하다는 듯이 굴었지만 정말 익숙한 건지, 그런 척을 하는 건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그저 흥밋거리로 이용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본인의 입으로 들어서 더했다. 지나가는 소문으로 들었다면, 츠키나가 레오가 어떤 돈 많은 후계자를 갖고 놀았더란다, 지저분한 이야기가 돌았다면 납득했을 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는 가면 뒤에 상대의 조소가 깔려있다면 어느 누군들 상처받지 않을까. 결국 레오가 선택한 건 자신을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여성이라는 껍질을 뒤집어 쓴 자에 한한 이야기다. 레오와 평생을 함께 할 여자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츠카사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청첩장을 받기 전부터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 작은 카드 따위야 그저 자신의 결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는 소도구일 뿐이다.
레오와 그렇게 헤어지고 난 후 수많은 감정들이 싸웠고, 승리한 것은 소유와 집착과 애증이었다. 그들의 왕의 뒷모습을 보며 남몰래 연모하는 수줍은 어린 기사의 숨통은 끊어졌다.
“우리가 이렇게 말해도 임금님은 결국 결혼식을 올릴 테고, 어찌 됐든 축복은 해줘야 하잖아.”
아라시의 달래는 목소리가 들렸다. 츠카사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결혼식이 열리는 날은 없을 거예요, 나루 선배.
“또 알아? 없던 일로 될지.”
맞아요, 세나 선배.
결혼식쯤이야 없던 일로 만들면 되는 문제였다.
(중략)
5월 X일
....
리더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눈이 가려지고 손이 구속된 상태의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는 태도였다. 그가 처음 한 말은 이거였다.
“어라, 이거 무슨 상황?”
눈이 안 보인다고, 라며 하하 웃었다. 눈을 가려선지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송곳니가 보일 정도로 벌어진 입을 보면 두려움의 기색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게 좋았다. 내가 데려온-납치한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리더라는 걸 테니까.
이렇게 그를 가까이서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헤어지기 직전에 나와 리더는 곧 커플이 되기 직전의 남녀처럼 그런 수줍음의 거리만 조금 남겨두고 같이 붙어있어서, 그의 눈가 밑에 내려온 피곤함의 수도 세어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때의 거리와 지금의 거리는 비슷한 것 같은데 묘하게도 멀게 느껴졌다. 그는 침대에서 버르작 거리며 일어났고 나는 그와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그에게 처음으로 할 말을 고민도 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실망하셨나요? 아니면 당신이 가지고 논 남자는 이 정도로 비열합니다, 아니면 이런 상황이 될 거라고 상상은 해 보셨나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그에게 건넬 말은 많았지만 그만큼 고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고민들은 모두 필요 없는 것이었다.
“저기, 근데 누구?”
그는 그렇게 말하며 어설프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마 사람이 있는 방향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깨웠으니 근처에 있는 거 맞지? 눈 가린 거 답답해. 풀어주면 안 돼?”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리더에게 할 수 있는 무수한 말들은 모두 그를 끌고 온 것이 ‘스오 츠카사’라는 걸 아는 전제로 하는 말들이었다. 그는 나의 혼란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끊임없이 물어왔다.
끌고 왔으면 이제 용건을 말해야 할 차례 아니야? 이렇게 눈을 가리고 있으면 뭘 원하는 지도 알기 어려워. 날 아는 사람이야?
그 목소리들은 명백한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이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말하는 순간 그는 내가 누군지는 눈치 채고 비난과 경멸을 모조리 쏟아 부을 것이다. 한때 좋아했던, 지금도 좋아하고 있을 지도 모를 그에게 더 이상의 폭언은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입을 열지 않으면 그는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없다. 눈을 가린 저 얇은 천 하나로 익명이라는 가면을 뒤집어 쓸 수 있다.
※ 해당 내용은 수정될 수 있습니다.
예약은 [이곳]에서 받고 있습니다.
예약 특전으로는 레오 시점 카피본을 드릴 예정입니다.
잘 부탁 드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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